오늘 6월 셋째 주일은 ‘아버지 날’(Fathers Day)입니다. ‘아버지 날’의 기원은 미국 남북 전쟁의 한 상이군인의 이야기로부터 시작됩니다. 남북전쟁에 나갔다가 부상을 입고 돌아온William Jackson Smart라는 가장이 있었습니다. 그는 6남매의 아버지였는데 돌아와보니 아내가 6남매를 두고 죽은 것입니다. 그는 자신도 부상으로 고통이 심했지만 그 후 21년 동안 온갖 고생을 다 겪으며 어린6남매를 키웠습니다. 6남매 중의 하나인 다드 여사(Sonoda Dad)가 ‘아버지 날’ 제정을 여론화하여 윌슨 대통령의 후원 서명을 받았고(1916) 그 후 닉슨 대통령이 6월 셋째 일요일을 전국적인 ‘아버지 날’로 제정할 것을 공식 선포하게 되었습니다.(1972)

  사실 생각해보면 아버지의 자리 역시 어머니의 자리 못지않게  중요합니다. 가정의 가장으로서, 제사장으로서, 남편으로서, 직장인으로서 아버지가 감당해야 할 일도 결코 만만치 않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요즘 아버지들의 설 자리가 점점 더 좁아지는 것 같습니다. 오죽하면 나이 든 남편이나 아버지를 가리켜서 애물덩어리라고 하겠습니까. 집에 혼자 두면 ‘근심덩어리’, 밖에 데리고 나가면 ‘골치덩어리’, 마주 앉으면 ‘웬수덩어리’, 거기다가 며느리에게 맡겨 놓으면 ‘구박덩어리’라고 하더군요.

  그러나 최요셉 목사님은 아버지를 다음과 같이 묘사했습니다.

 '아버지의 미소 속에는 아이를 위한 장래의 걱정이 있고, 아버지의 주머니 속에는 아이를 위한 희생적 준비가 있다. 아버지의 가슴에는 아이들에게 훌륭한 모범이 못 된 가책이 늘 있고, 아버지의 심장 속에는 좀 더 좋은 아빠가 되려는 결심이 있다아버지는 속으로 울고 겉으로 위로하는 자이며, 속으로 사랑하고 겉으로 책망하는 자이다. 아버지는 최후까지 남을 아이의 고향이며 영원히 배반하지 않을 아이의 친구이다…"

  인터넷 글에서 남자들의 일생이라는 글을 읽었습니다. 남자는 태어나서 10대가 되기 전까지 아버지를 슈퍼맨처럼 생각한다고 합니다. 그러다가10대가 되면서 아버지는 고집불통에 자신과 대화가 되지 않는 먹통이라고 생각을 한다고 합니다. 20대가 되서는 아버지와 같은 실패한 인생을 살지 않겠노라고 다짐을 한다고 합니다. 그런데30대가 되어 가정을 꾸리고 아이를 낳으면서 아버지도 나와 같은 생각을 하셨을까라고 생각한답니다. 40이 되면서는 나도 어버지처럼 살 수 있을까라는 생각을 하게 되고  50이 되어서는 아버지만큼이라도 할 수 있을까라고 생각을 하고 60이 되면 비로소 내 아버지가 옳았다고 고백을 한다고 합니다.

  그 글을 읽으며 마음이 뭉클했습니다. 저 역시 어리고 젊었을 때 아버지를 잘 이해하지 못했었기 때문입니다. 돌이켜보면 한국에서 안정된 직장을 가지셨던 아버지께서 가족들을 위해 이민을 결정하시고 40이 훌쩍 넘은 나이에 미국에 오셨으니 얼마나 적응하시기에 힘드셨을까 생각해봅니다. 아버지의 무척이나 외로우셨을 마지막 날들을 생각해 봅니다. 이제 60의 문턱에 들어서며 이제야 저의 아버님을 조금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유난히 돌아가신 아버지가 보고 싶어지는 아버지날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