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회자 칼럼:두려워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 20:1~9)

   우리는 이제까지 겪어보지 못한 펜데믹의 한 가운데를 걷고 있습니다. 이로 인해 많은 분들이 불안, 스트레스, 염려, 공포, 외로움, 무기력감, 좌절감, 죄책감, 분노, 격리 생활 피로감등을 느끼고 있습니다. 이러한 부정적인 정서는 누구에게나 일어나는 정상적인 것입니다. 중요한 것은 이러한 우리의 정서적 변화에 어떻게 반응하는가 하는 것입니다. 그 반응에 따라서 이 상황이 우리를 더욱 성숙하고 강하게 할 수도 있고 우리를 낙심과 좌절로 주저앉게 할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정신과 상담은 이러한 부정적 감정에 놀라거나 죄책감을 느끼지 말고 가능한 수용 (Accept) 하라고 권면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말씀은 이러한 두려움과 걱정에 맞서 싸우라고 선포하십니다. 싸워서 이기라고 말씀하십니다. 우리에게는 반드시 이길 수 있는 이유가 있기 때문입니다. 그것은 하나님께서 반드시 우리와 함께 하시겠다는 약속입니다.

   그렇습니다. 하나님이 함께 하신다는 확신이 있는 사람은 그 확신의 깊이만큼 두려움을 대적하여 이겨낼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우리가 두려워하는 이유는 결국 하나님이 과연 나와 함께 계시는가 하는 확신이 없기 때문일 것입니다.

   예수를 구주와 주님으로 영접하셨습니까? 그렇다면 그 분은 여러분 안에 이미 거처를 정하셨습니다 (고후 13:5 예수 그리스도께서 너희 안에 계신 줄을 너희가 알지 못하느냐 그렇지 않으면 너희는 버림받은 자니라).  본문에서 계신다는 말씀의 원어는 거주한다는 뜻의 카토이케오인데 카타(down)라는 뜻과 오이케오 (집에서 한 가족으로 거주하다)라는 뜻을 가진 두 단어의 합성어입니다. 곧 주님께서 하늘에서 내려오셔서 우리와 같은 집에서 가족처럼 함께 거하신다는 의미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각자의 두려움의 반응이 다른 것은 각자가 자신 안에 계신 주님을 경험하는 차원이 다르기 때문입니다. 그 주님으로 충만해서 웬만한 사건이나 뉴스에는 눈 하나 깜짝 않는 분들이 계시는가 하면 안 믿는 자와 별 차이가 없어 보이는 분들도 계십니다. 그 차이는 주님이 함께 하시고 함께 하시지 않고의 차이가 아니라 이미 함께 하시 주님을 얼마나 경험하고 누리는가 하는 차이입니다.

   당신 안에 계신 주님을 더욱 깊이 경험하고 누리시기 원하십니까? 그렇다면 첫째, 그 분과 좀더 깊이 교통하십시오. 찬양으로, 기도로, 말씀으로 그 분과 교통하는 훈련을 하십시오. 그렇게 주님과 교통하는 자는 물가에 심어진 나무가 그 뿌리를 강변에 뻗치고 더위가 올지라도 두려워하지 아니하며 그 잎이 청청하며 가무는 해에도 걱정이 없고 결실이 그치지 아니함 같을 것입니다 ( 17:7~8).

   둘째, 당신 안에 계신 주님을 손님이 아닌 주인으로 모시려고 최선을 다하십시오. 모든 것을 주님과 상의하며 결정하는 훈련을 하십시오.

   셋째, 당신 안에 계신 주님이 편안하실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십시오. 구체적으로 하나님의 성령을 근심하게 하지 마시고 ( 4:30), 위의 것을 생각하고 땅의 것을 생각하지 마시고 ( 3:2) 모든 생각을 사로잡아 그리스도에게 복종하며 (고후 10:5) 하나님이 기뻐하지 않으시는 생각들은 버리는 훈련을 하십시오.

    잊지 마십시다. 우리 안에 계신 주님을 경험하는 만큼 우리는 두려움과 근심을 싸워 이길 수 있습니다. 사랑합니다. 승리하십시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