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회자칼럼: 신앙의 양심을 지키려면 (27:11~26)

  만물을 심판하실 예수님께서 자신이 구원하러 오신 인간들의 판결을 받기 위해 빌라도의 재판대 앞에 서십니다. 사실 빌라도는 예수님을 살려주기 원했습니다. 그는 유대 종교 지도자들이 죄없으신 예수님을 시기해서 자기에게 넘겨준 것을 알았습니다. 또한 빌라도의 아내도 예수님을 '옳은 사람'이라고 부르면서 그를 살려주라고 부탁을 합니다.

  이 모든 사실이 빌라도의 양심의 눈을 뜨게 만들지만 그의 양심은 곧 심한 갈등을 겪게 됩니다. 그는 예수님을 놓아주려고 했지만 대제사장들과 장로들에게 설득당한 무리들은 살인범 바라바를 대신 놓아주고 예수님은 십자가에 못박으라고 소리지릅니다. 빌라도는 결국 예수님을 채찍질하고 십자가에 못 박히게 군사들에게 넘겨줍니다. 그의 양심의 갈등은 현실과의 타협으로 끝이 나고 만 것입니다.

  저는 양심의 가책을 느끼면서도 양심대로 결단하지 못하고 현실과 타협하는 빌라도의 모습에서 저 자신의 모습은 봅니다. 저 역시 진리를 알면서도 진리대로 살지 못하고 신앙의 양심이 찔리면서도 그 양심대로 살지 못할 때가 있기 때문입니다. 여러분들은 어떻습니까? 왜 올해 교회 표어를 '배운 말씀을 살아내는 교회'라고 정했을까요? 말씀대로 살아지지가 않기 때문입니다. 맒씀대로 살아내지 못한다면 그 배움이 아무 의미가 없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우리에게 위로를 주는 사실은 위대한 사도 바울 역시 빌라도와 같은 갈등을 겪었다는 것입니다. 바울 역시 '내가 원하는 바 선은 행하지 아니하고 도리어 원하지 아니하는 바 악을 행하는도다 오호라 나는 곤고한 사람이로다 이 사망의 몸에서 누가 나를 건져내랴 '(7:19,24) 탄식했던 사람입니다.

  그런데 그 다음 말씀이 빌라도와 바울을 갈라 놓습니다. 빌라도가 해결하지 못한 양심의 한계, 곧 양심의 갈등을 겪으면서도 양심대로 살지 못하는 자신의 한계를 바울은 이렇게 극복합니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께 감사하리로다!' 그렇습니다. 바울은 자신의 양심의 한계를 예수님으로 말미암아 극복하고 감사했습니다!

  우리는 한 늙은 인디안의 교훈을 결코 잊지 말아야 합니다.  할아버지 인디안이 손자 인디안에게 말합니다. 얘야 우리 안에는 늘 좋은 늑대와 악한 늑대 두 마리가 같이 살고 있단다.  손자가 묻습니다. 어느 늑대가 이겨요? 할아버지의 대답을 잊지 마십시오. '응 그야 우리가 먹이를 주는 늑대가 이기지...'

  결국은 힘의 싸움입니다. 내 안에서 수시로 일어나는 양심과 현실과의 싸움, 영의 사람과 육의 사람과의 싸움, 순결한 마음과 세상 유혹과의 싸움은 힘이 센 쪽이 이깁니다. 그러기에 우리는 늘 예수 그리스도로부터 임하는 은혜를 의지해야 합니다. 동시에 영력과 영성의 훈련을 게을리하지 말아야 합니다. 날마다 말씀으로, 찬양으로, 기도로, 성령 충만으로 그리고 예배로 당신의 영력을 키우십시오.  그리고 날마다 주님과 깊은 사랑의 교제를 나눔으로 영성의 깊이를 더하십시오. 영의 사람이 강해질수록 우리는 이 싸움을 이길 수 있습니다. 확언하건대 언젠가는 바울의 승리의 고백이 우리의 고백이 될 것입니다! 주님이 승리하셨듯이 우리도 승리하게 될 것입니다!

사랑합니다, 오늘도 승리하십시오, 중단 없는 영성과 영력의 훈련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