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회자칼럼: 바로가 멸망한 이유 (10:1~11)

  하나님께서 가장 싫어하시는 죄는 교만입니다. 교만은 모든 죄의 뿌리이기 때문입니다. 루시퍼가 하늘에서 쫓겨난 것도 하나님과 비기려는 교만 때문이요 아담과 하와가 에덴에서 쫓겨난 것도 하나님 같이 되려는 교만 때문이요 바로가 결국 멸망한 이유도 그의 교만 때문입니다. 말씀은 교만은 멸망의 선봉이요 겸손은 존귀의 길잡이라고 증거합니다 (18:12). 바로는 정확하게 말씀대로 교만 때문에 멸망당한 것입니다.

  바로가 그토록 교만했던 이유는 하나님의 것을 자신의 것이라고 착각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내 백성을 보내라 말씀합니다. 그러나 바로는 자기 백성이기 때문에 못 보내겠다는 겁니다. 바로는 자기 소유인 히브리 노예들을 하나님이 뺏아간다고 생각하는 것입니다.

  왜 우리가 겸손하려고 애를 씀에도 불구하고 자꾸 교만해지는가요? 우리 역시 하나님 것을 우리 것이라고 착각하기 때문입니다. 저를 예를 들면 하나님이 세우신 베델 교회를 제가 개척해서 세웠다고 착각하는 순간 교만에 빠지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보내주신 성도님들을 제가 잘나서 사람들이 모여왔다고 착각하는 순간 교만에 빠지는 것입니다.

  여러분들도 동일합니다. 하나님이 주신 은사, 물질, 건강, 자녀, 생명, 그리고 하나님이 주신 구원, 이 모든 것들이 내가 잘나서 내 것이 되었다고 착각하는 순간 우리는 교만에 빠지는 것입니다.

  말씀을 들어 보십시오. '누가 너를 남달리 구별하였느냐 네게 있는 것 중에 받지 아니한 것이 무엇이냐 네가 받았은즉 어찌하여 받지 아니한 것 같이 자랑하느냐' (고전4:7). 우리가 할 일은 자랑이 아니라 감사입니다. 우리는 하나님께로부터 모든 것들을 받았기 때문입니다.

  또한 교만한 자는 자신을 위해서 현실을 직언하는 사람들의 말을 듣지 않습니다. 보다 못한 바로의 신하들이 왕은 아직도 애굽이 망한 줄을 알지 못하냐고 직언을 할 때에도 (7) 바로는 그들의 말을 인정하지 않습니다.

  우리는 우리를 위해 직언하는 사람들에게 귀를 기울여야 합니다. 서로 직언할 수 있어야 하고 서로 직언을 받아들일 수 있어야 합니다. 그런데 이것이 보통 어려운 게 아닙니다. 어느 분이 어떤 문제가 있다고 해도 모두들 말을 하지 못합니다. 받아들이는 분들이 상처 받을까봐, 오해할까봐, 함부로 나서지를 못합니다. 그러다가 결국 엉뚱한 곳에서 문제가 터지곤 합니다. 우리는 직언하는 사람들을 고맙게 생각해야 합니다. 그리고 받아 들여야 합니다. 그것이 겸손한 자의 모습입니다.

  하나님은 겸손한 자를 존귀하게 해 주십니다 (18:12). 은혜를 베풀어 주십니다 (4:6). 그리고 반드시 높여주십니다 (23:12).

 

사랑합니다. 이번 한 주도 행복하십시오, 오직 십자가와 주님만을 자랑하심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