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회자칼럼: '적당한 믿음, 온전한 믿음' (1:1~21)

  여호수아는 죽었지만 아직 이스라엘이 점령해야 할 땅은 남아 있었습니다. 그래서 이스라엘 자손들은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요청합니다. 그런데 여호수아가 없는 상황에서 그들은 몇 가지 신앙의 오판들을 함으로 가나안 세대의 출발을 불안하게 합니다. 작은 실수들 같지만 다가오는 그들의 타락과 하나님의 징계의 전주곡 같이 느껴집니다. 

  구체적인 그들의 실수는 다음과 같습니다. 첫째, 하나님께서 유다 지파로 하여금 올라가서 싸우라고 했는데 그들은 시므온 지파와 함께 올라갑니다. 말씀에 무언가를 더한 것입니다.

  둘째, 그들은 그들이 사로잡은 적장을 아주 잔인한 방식으로 죽입니다. 그런데 그 방식은 가나안의 전쟁 풍습을 따른 것입니다. 그들은 이미 가나안의 풍습에 물들기 시작한 것입니다.

  셋째, 그들과 함께 했던 모세의 장인 이드로의 후손을 가나안 사람들과 함께 거주하게 합니다. 이들은 이스라엘 사람들도 아니고 가나안 사람들도 아닌데 두 민족 사이에서 중간 역할을 하는 결과를 낳게 됩니다. 그로 인해 가나안의 우상 숭배와 타락한 문화들이 이스라엘에게로 흘러들어가게 된 것은 더 말할 나위가 없습니다. 

  넷째, 그들은 산지 주민은 쫓아내었지만 골짜기의 주민은 쫓아내지 못했습니다. 또한 예루살렘에 거하는 여부스 족속들을 쫓아내지 않습니다. 그들이 힘이 부족해서라고 볼 수도 있겠지만 훗날 그들이 강성해진 후에도 그들은 가나안 민족들을 다 쫓아내지 않습니다. 그 이유는 그들을 노예로 삼아 그들의 노동력을 착취하여 경제적 유익을 구했던 것입니다. 노예의 사슬을 벗고자 출애굽했던 이스라엘의 후손들이 가나안 민족을 노예로 부리고자 했던 것입니다.

  말씀에 순종하는 자는 하나님이 복을 주시고 승리케 하십니다. 문제는 지속적으로 순종하는 것이 결코 쉽지 않다는 사실입니다. 그런데 하루 아침에 불순종으로 빠지는 것은 아닙니다. 작은 실수나 오판이, 작은 타협이, 작은 불순종이 점차적으로 큰 불순종으로 이어집니다.

  그래서 시작이 중요합니다. 처음에 조금이라도 틈을 주면 안 됩니다. 댐에 작은 금이 생긴 것을 무시하면 어느 순간 댐이 무너져내리는 큰 재앙을 겪을 수 있는 것과 같습니다. 특별히 말세의 영적 혼돈과 타락의 시대에 사는 우리들에게 영적 긴장은 늘 필요합니다. 적당히 믿는 것은 늘 위험합니다. 우리는 늘 적당한 믿음이 아닌 온전한 믿음을 추구해야 하겠습니다.

  본문은 그렇게 온전한 믿음의 인물로 갈렙을 제시하며 타협해가는 이스라엘 민족들과 대조시킵니다. 그는 가나안 땅에서 가장 난공불락의 요새인 헤브론과 그곳에 사는 아낙 자손 (일찍이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메뚜기 신드롬을 불러 일으켰던 거인 민족)을 쫓아내는 기적적 승리를 거둡니다. 그의 승리의 이유를 성경은 갈렙의 입을 통하여 이렇게 선포합니다.

  '여호와께서 나와 함께 하시면 내가 여호와께서 말씀하신 대로 그들을 쫓아내리이다 …이는 그가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를 온전히 좇았음이라'( 14:12,14)

 

사랑합니다. 이번 한 주도 승리하십시오, 갈렙과 같이 여호와만을 온전히 좇는 믿음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