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회자칼럼: 진정한 친구 (욥기 3:1~10)  

  풍요 속에서는 친구들이 나를 알게 되고, 역경 속에서는 내가 친구를 알게 된다는 말이 있습니다 (존 철튼 콜린스). 욥은 그 말대로 역경 속에서 친구들의 민낯을 알게 됩니다. 이해와 위로가 간절했던 욥을 친구들은 정죄와 비판으로 일관했기 때문입니다.

  욥은 그의 친구들을 변덕스러운 개울에 비유합니다. 이스라엘의 개울은 겨울에는 물이 엄청 불어나지만 여름에는 말라버립니다. 한창 여름철 목이 말라 이전에 있었던 개울물을 기억하고 찾아가다 보면 마른 바닥만 보며 낭패하게 됩니다. 목이 마르도록 진정한 친구가 그리운 이 순간 정작 나에게는 그런 친구가 없다는 욥의 탄식입니다.

  그렇습니다. A FRIEND IN NEED IS A FRIEND INDEED라는 말은 영원한 진리입니다. 가장 필요할 때에 옆에 있는 친구가 진정한 친구입니다. A FRIEND IS SOMEONE WHO COMES IN WHEN THE WHOLE WORLD GOES OUT. 나의 모든 세상이 무너질 때 그 때에 찾아와 주는 친구가 진정한 친구입니다.

  특히 ‘옳은 말이 어찌 그리 고통스러운고’(25) 하는 욥의 탄식은 우리 모두의 입술을 돌아보게 합니다. 언젠가 늘 저에게 옳은 말을 해주던 집사님에게 제가 드린 말이 있습니다. ‘집사님, 집사님의 말은 다 옳고 틀린 말은 하나도 없는데, 집사님 말을 계속 듣다 보면 내가 힘이 빠집니다. 의욕이 빠져서 하고 싶은 마음이 없어져 버립니다...’ 그때 집사님께서 당황하시면서 이렇게 답하셨습니다. ‘아 목사님 죄송합니다. 저는 목사님을 도와 드리려고 드린 말씀인데…’ 그후부터 그분은 옳은 말을 넘어서 은혜로운 말을 하려고 애를 쓰시는 모습을 보이셨습니다. 얼마나 감사한지요.

  어찌 그 집사님 한분 뿐이겠습니까? 누구보다 말을 많이 해야 하는 저 역시 얼마나 많이 옳은 말이라는 이유로 남을 아프게 했겠습니까? 옳은 말보다 더 중요한 건 은혜로운 말입니다.

  고 손인식 목사님께서 늘 하시던 말씀이 있습니다. ‘그 사람의 모자를 쓰고 그 사람의 신을 신고 하룻길을 걸어보기 전에는 결코 그 사람에 대해서 말하지 말라.’ 기억은 하는데 그렇게 살아왔는지 자신을 돌아보지 않을 수 없습니다. 

  욥이 진정으로 원하는 것은 형제와 같은 친구들의 이해요 신뢰였습니다. 그렇습니다. 우리는 사람들의 어려움을 해결해 줄 능력은 없습니다. 병을 고쳐 줄 수도, 가난을 해결해 줄 수도 없습니다. 그러나 옆에서 격려하고 공감하고 지지해 줄 수는 있습니다. 때로 그 격려의 말 한 마디가 한 사람의 일생을 위기에서 구해낼 수 있음을 잊지 마십시다.

  사랑합니다. 이번 한 주도 행복하십시오, 옳은 말을 넘어 은혜로운 말로 주위 사람들에게 행복을 나누어 주심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