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회자칼럼: 중보자를 찾는 욥 (욥기 9:25~35)

  욥은 친구들과의 헛된 논쟁을 중단하고 자신의 고난의 삶을 탄식합니다. 아무도 들어주지 않는 쓸쓸한 탄식입니다.

  나의 인생은 너무나 짧고 헛되다고 탄식합니다 (25~26). 이 땅에서 오래 살고 싶어서가 아닙니다. 이렇게 자신의 무죄함을 해명할 기회도 없이 끝나버릴까봐 허무해하는 탄식입니다.

  나의 인생은 웃고 싶어도 웃지 못하는 슬픈 인생이라고 탄식합니다 (27~29). 하나님이 주시는 고통이 두려워서 웃고 싶어도 웃을 수가 없다는 슬픈 탄식입니다.

  나의 인생은 아무리 씻어도 깨끗해질 수 없는 인생이라고 탄식합니다 (30~31). 눈이 녹은 차고 깨끗한 물로 온 몸을 씼어도, 독한 잿물로 손을 씻어도 다시 시궁창에 빠지기에 결코 깨끗해질 수 없다는 절망의 탄식입니다.

  나의 인생은 공정한 재판도 받을 수 없는 억울한 인생이라고 탄식합니다 (32~33). 하나님이 자신을 정죄하는 검사이시요 동시에 재판장이시기에 호소하여도 자신을 위한 판결자나 변호자가 없다는 억울한 탄식입니다.

  홀로 외로운 싸움을 싸우고 있는 욥에게 지금 가장 필요한 것은 그의 편에 서서 그의 호소를 들어주고 그의 입장을 대변해 줄 수 있는 판결자, 변호자 또는 중보자입니다. 그러나 그의 주위에는 그의 편이 아무도 없습니다. 아내도, 친구도, 심지어 하나님도 그의 편이 아닙니다. 이에 그는 탄식합니다. 우리 사이에 손을 얹을 판결자도 없구나.

  그런데 바로 그분이 우리에게는 있습니다! 우리의 호소를 들어주시고 우리의 입장을 대변해 줄 수 있는 판결자, 대변자, 중보자가 있습니다! "하나님은 한 분이시요 또 하나님과 사람 사이에 중보도 한 분이시니 곧 사람이신 그리스도 예수라." 디모데전서 2 5

  죄인인 우리가 지극히 거룩한 하나님 앞에 나아간다는 것은 불가능한 일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중보자 예수의 피를 힘입어 성소에 들어갑니다 (10:19). 죄인인 우리가 온전히 죄씻음을 받는 건 불가능합니다. 그러나 욥이 눈이 녹은 물과 잿물로도 씻지 못했던 더러운 죄를 우리는 중보자 예수의 피로 온전히 씻습니다. 죄인인 우리는 하나님 앞에 할 말이 없습니다. 그런데 그때 우리 주님께서 우리를 위해서 대신 변호해 주십니다. 우리가 하고 싶지만 차마 못하는 변명들을 대신해 주십니다(요일 2:1).

  그분은 우리의 연약함을 아십니다.  육신의 몸을 입고 오셨기에 우리의 육신의 정욕이 얼마나 강한지를 아십니다. 우리와 똑같이 시험을 받으셨기에 죄의 유혹이 얼마나 강한지 아십니다. 그래서 그분은 우리를 정죄하는 대신에 우리의 편을 들어주십니다!

  그 누구도 욥의 편에 서주는 사람은 없었습니다. 그러나 우리에게는 우리의 편에 서주는 분이 계십니다. 우리의 연약함을 아시되 정죄하지 않고 오히려 우리 편에 서주시는 분, 우리는 그분이 계시기에 하루 하루를 승리할 힘을 얻을 수 있습니다.

 

사랑합니다. 오는 한 주도 승리하십시오, 늘 당신 편에 서주시는 중보자 예수님과 함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