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회자칼럼:희망을 잃으면 모든 걸 잃습니다 (17:6~16)

  일찍이 종교 개혁자 말틴 루터는 이 세상을 움직이는 힘은 희망이라고 말했습니다. 세상을 움직이는 힘이 희망이라면 우리를 움직이는 힘도 희망입니다. 자식들이 번듯하게 자랄 희망이 없다면 어떻게 부모 노릇을 하겠습니까? 우리 가정이 더 나아질 것이라는 희망이 없다면 어떻게 결혼생활을 버텨나가겠습니까? 이 땅에서의 주님을 위한 수고가 하늘에서 보상 받을 것이라는 희망이 없다면 말세지말의 시대에 어떻게 주님의 사역을 버텨나가겠습니까? 모든 일이 실패로 돌아가는 것 같아도 내일의 희망이 있다면 그 사람은 오늘을 버텨낼 수 있습니다. 그런데 그 희망을 잃으면 살아갈 의욕을 잃습니다.

  오늘 본문에서 욥이 나의 희망이 어디 있으며 나의 희망을 누가 보겠느냐 (15) 탄식한 이유는 첫째 그가 사람의 말에 너무 귀를 기울였기 때문이 아닌가 조심스럽게 추측해봅니다. 욥은 사람들이 자신을 웃음거리로 삼고 얼굴에 침을 뱉을 정도로 비웃는다고 탄식합니다. 때로 이렇게 의인도 비웃음을 당할 때가 있습니다. 아니 의인이기 때문에 비웃음을 당할 때가 있습니다.

  그러므로 희망을 잃지 않으려면 사람의 말이 아닌 하나님의 말씀을 더 묵상해야 하겠습니다. 이상하게도 사람의 말은 좋은 말 백마디보다 아픈 말 한 마디가 더 잊혀지지 않고 묵상하게 됩니다. 별 생각 없이 던진 말 한 마디로 부부가 갈라지고 친구가 원수가 되는 경우들이 결코 적지 않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말씀은 묵상할수록 위로가 되고 치유가 되고 힘이 되고 희망이 솟습니다. 그러기에 사람의 아픈 말을 하나님의 위로의 말씀으로 씻어낼 수만 있다면 우리는 어떠한 아픔과 상처도 치유 받을 수 있을 줄 믿습니다.

  욥이 희망을 포기한 또 하나의 이유는 하나님이 욥을 포기했다고 믿었기 때문입니다. 그 억울한 고난에 대해서 하나님은 한 마디 설명도 없으시니 그럴만도 합니다. 그러나 정말 하나님이 욥을 포기하셨습니까? 천만의 말씀입니다. 하나님은 욥의 모든 상황을 한 순간도 눈을 떼지 않고 주목하고 계시고 욥의 한 마디 한 마디에 귀를 기울이고 계십니다. 그 사실은 욥기 42장에서 하나님이 욥의 친구들에게 하신 말씀에서 알 수 있습니다. ‘너희가 나를 가리켜 말한 것이 내 종 욥의 말 같이 옳지 못함이라’(42:8).

  그렇습니다. 우리 역시 종종 하나님이 우리를 포기한 것 같이 느낄 때가 분명히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 하나님은 결코 우리를 포기하신 적이 없습니다. ‘희망은 결코 당신을 버리지 않는다. 당신이 희망을 버릴 뿐이다’ 라는 격언이 있습니다. 저는 이렇게 선포하고 싶습니다. 하나님은 결코 당신을 포기하지 않으신다. 당신이 하나님을 포기할 뿐이다!

  하나님은 우리를 포기하지 않으십니다. 설령 우리가 포기한다 할지라도 그분은 포기하지 않으십니다. 자신의 독생자의 생명을 포기하셔서 십자가에 못박으실지언정 우리를 포기하지 않으십니다. 그리고 하나님이 포기하지 않는 한 우리에게는 희망이 있습니다. 우리 하나님은 소망의 하나님이시기 때문입니다, 할렐루야!

소망의 하나님이 모든 기쁨과 평강을 믿음 안에서 너희에게 충만케  하사 성령의 능력으로 소망이 넘치게 하시기를 원하노라(15:13).

  사랑합니다. 오늘도 넉넉히 버텨내십시오, 나를 결코 포기하지 않으시는 하나님을 온전히 붙드심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