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회자 칼럼: 부활에 관한 두 가지 질문 (고전 15:35~49)

  기독교는 신비의 종교입니다. 주님이 십자가에서 돌아가심으로 우리가 살게 된 것도 신비요 주님이 부활하신 것처럼 우리 역시 부활하여 영원히 사는 것도 신비입니다. 이에 고린도 교인들은 질문합니다. 어떻게 죽은 자들이 다시 살아나는가? 어떠한 몸으로 살아나는가?

  바울은 죽은 자들이 살아나는 것을 씨를 심고 거두는 것으로 설명합니다. 씨가 땅에 묻혀 죽으면 그 씨에서 싹이 나고 나무가 자라듯이 우리의 육신이 땅에 묻혀 죽으면 부활의 몸으로 새롭게 태어난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죽은 씨에서 싹이 나게 하시듯이 죽은 육신을 부활의 몸으로 바꾸신다는 것입니다.

  육신의 몸과 부활의 몸은 서로 다르지만 연결이 되어 있습니다. 완전히 새로운 몸이 아니라 이전의 몸이 새롭게 변화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러기에 우리는 천국에서도 서로를 알아볼 수 있습니다. 베드로가 변화산에서 모세와 엘리야를 바로 알아보았고 죽은 부자도 거지 나사로를 바로 알아보았습니다. 그러니 우리가 천국에서 다시 만날 때 얼마나 반가울까요?

  우리의 부활한 몸은 어떠한 몸일까요? 우리의 육체와 부활한 몸은 서로 연관성은 있지만 다른 모습입니다. 이 땅에 썩을 육신을 심지만 썩지 아니할 부활의 몸으로 다시 살아납니다.

욕된 육신을 심지만 영광스러운 몸으로, 약한 육신을 심지만 강한 몸으로, 육의 몸으로 심지만 신령한 몸으로 다시 살아납니다 (42~44) 

  그 부활의 몸은 부활하신 주님의 몸을 닮은 몸입니다 (49). 사도 요한도 주님이 나타나시면 우리가 그와 같을 것이라고 말씀합니다 (요일3:2). 부활하신 주님께서는 잡수시고 마셨기에 우리의 부활한 몸도 먹고 마실 것이라고 추측할 수 있습니다. 부활하신 주님은 공간을 초월하셔서 나타나시고 사라지셨기에 우리의 부활한 몸도 공간을 초월할 수 있다고 추측할 수 있습니다. 공간을 순간적으로 이동하거나 심지어 천사처럼 날아다닐 수도 있을 것입니다. 또한 부활의 몸은 깨끗한 세마포를 입고 영광 가운데 영원히 빛날 것입니다 ( 12:3).

  우리는 천국에서 영원토록 뭘 하고 지낼까요? 우리는 결코 빈둥빈둥 놀지 않습니다. 대신 하나님을 섬길 것입니다 (22:3 다시 저주가 없으며 하나님과 그 어린 양의 보좌가 그 가운데에 있으리니 그의 종들이 그를 섬기며) ( 25:21 네가 적은 일에 충성하였으매 내가 많은 것을 네게 맡기리니 네 주인의 즐거움에 참여할지어다).

  천국은 절대 boring 하지 않을 것입니다. 우리 하나님은 결코 boring 하신 분이 아니시기 때문입니다. 오히려 우리는 날마다 주님의 임재 앞에서 하나님을 섬기는 기쁨과 즐거움을 누리며 살 것입니다 ( 16:11).

  세상은 부활을 믿는 우리들을 어리석은 자라고 부릅니다. 그러나 바울은 부활을 의심하는 자들을 어리석은 자(36)라고 부릅니다. 하나님이 빠지면 도저히 믿어지지 않는 부활이지만 하나님이 개입하는 순간 부활은 우리 모두에게 곧 다가오는 현실이요 확신이 됩니다.

  불완전한 우리가 불완전한 세상에서 살려니 힘들 때가 많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주님의 날 완전한 천국에서 완전한 몸으로 변화되어 완전한 영생을 누릴 것입니다. 이것이 이 땅의 믿음의 순례의 길이 힘들고 외로워도 늘 감사하고 기뻐할 수 있는 이유입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