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회자 칼럼: 두 가지 근심 (고린도후서 7:8~16)

  한국분들이 하루에 평균 웃는 시간은 2분 정도이고 근심하는 시간은 2시간이라는 통계가 있습니다. 어떻게 세상을 살아갈까 근심하는 것이 우리 모두의 몸에 배어 있다는 말이지요. 그러나 바울은 우리에게 강하게 경고합니다. ‘세상 근심은 사망을 이루는 것이니라’(10).

  예수님 역시 말씀의 씨앗 비유에서 가시떨기에 떨어진 말씀은 세상의 염려와 재물의 유혹과 기타 욕심에 막혀 결실하지 못했다고 경고하십니다 (13:22). 심지어 먹고 살기 위한 걱정, 다가오는 내일을 위한 염려도 하지 말라고 하십니다. 우리 하늘 아버지께서 이 모든 것이 우리에게 있어야 할 줄을 아시기 때문입니다! (6:31~34).

  그러기에 우리는 세상의 근심으로부터 우리의 마음을 지켜야 하겠습니다. 그 근심을 기도로 바꾸어서 하나님께 맡겨 드려야 하겠습니다 (벧전5:7). 늘 말씀드렸듯이 내가 나에게 말하는 것은 근심이지만 하나님께 말씀드리는 것은 믿음의 기도이니까요!

  그런데 본문에는 또 한 가지의 근심이 나옵니다. 하나님의 뜻대로 하는 근심입니다 (9). 하나님의 뜻대로 하는 근심은 하나님의 뜻을 이루기 위한 근심입니다. 그 근심은 세상 근심처럼 우리를 해치는 근심이 아니라 우리를 회개로 이르게 하기 위한 유익한 근심입니다 (9).

  고린도 교인들은 바울이 눈물의 편지를 통하여 그들의 잘못을 강하게 책망했을 때에 심히 근심했습니다. 이 근심의 원뜻은 슬퍼하다, 아파하다, 비통해 하다는 뜻입니다. 그러나 그들은 그 근심으로 인해 자신들을 돌아보았고 하나님 앞에 돌아와 회개했습니다. 그리하여 더욱 은혜를 사모하고 열심을 갖게 되었고 바울을 이해하고 변호하게 되었으며 심판의 하나님을 두려워하게 되었고 그들을 기만하고 선동했던 자들에게 분노하며 그들을 벌하는 회개의 열매를 맺게 되었습니다 (11). 바울은 이러한 회개의 열매를 보며 큰 기쁨과 위로를 받습니다.

  묻습니다. 당신의 근심은 어떤 근심입니까? 하나님의 뜻을 이루기 위한 근심, 하나님의 나라와 하나님의 의를 구하기 위한 근심, 그러기 위해 자신을 진지하게 돌아보게 만드는 근심입니까?  아니면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마실까 무엇을 입을까 내일은 어떻게 살까 하는 세상의 근심입니까?

  받아들이시기 쉽지 않으시겠지만 세상의 근심은 우리의 영혼을 죽이는 근심이요 하나님의 뜻대로 하는 근심은 영혼을 살리는 근심입니다. 그러므로 세상 근심은 하나님께 맡기십니다. 모든 세상 근심으로부터 자유로와질 때까지 하나님께 기도로 맡기는 훈련을 멈추지 마십시다.

  대신 세상 근심할 시간에 하나님의 뜻에 합당한 근심을 하십시다. 어떻게 해야 하나님의 뜻을 이루고 어떻게 살아야 하나님의 뜻에 합당한 깨끗한 삶을 사는가, 어떻게 해야 내가, 그리고 우리 교회가 하나님의 나라와 의를 먼저 구하는가 하는 근심을 하십시다. 하늘 아버지께서 바울과 온 고린도 성도들이 누렸던 기쁨과 위로를 우리에게도 충만히 부어 주실 것입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