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회자 칼럼: 죽음에 대하여 (창세기 23:1~20)

사라는 백이십칠세에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습니다.이 땅에 올 때는 순서대로 오지만 갈 때는 순서가 없다는 말처럼 사라는 아브라함보다 열 살이나 어린 나이임에도 먼저 부르심을 받습니다. 이는 어느 누구도 오늘 하루 건강을 장담할 수 없고 생명을 장담할 수 없음을 말해줍니다. 그러기에 나에게 주어진 오늘 하루를 감사하며 오늘이 마지막이듯이 최선을 다해야 하겠습니다. 

아브라함은 사라의 죽음을 애통해합니다. 삶의 모든 순간을 함께 나눠온 늙은 아내의 죽음에 심히 슬퍼합니다. 사랑하는 배우자와의 이별은 모두가 겪어야 하는 슬픔이지만 여전히 인생에서 가장 감당하기 힘든 순간입니다. 배우자와의 사별의 스트레스 지수를100으로 보았을 때 2위는 이혼으로 스트레스 정도가 73, 3위는 별거로 65 정도 된다고 하니 우리가 겪는 인생의 최고의 슬픔이라고 하겠습니다. 그래서 최소 3년은 그 슬픔에 잠긴다고 합니다.

사라는 아름다운 여인으로 만국의 어머니로 불렸지만 그 역시 가슴이 많이 아팠던 여인입니다. 묵묵히 남편을 따라 순종하여 고향을 떠났지만 바로에게, 아비멜렉에게 불려가는 수치를 겪었습니다 (남편은 아무 도움이 못 되었지요). 아이를 낳지 못함으로 인해 많이 힘들어했고 자기 몸종이 이스마엘을 낳고 자기를 무시하는 수모도 겪어야 했습니다. 시기와 질투로 인해 하갈과 그 아들을 쫓아 내버린 잘못도 저질렀습니다. 그렇지만 사라는 이삭을 낳고 40여년간 믿음의 사람으로 잘 키우고 남편 잘 섬기다가 이제 하나님의 품으로 안깁니다. 아내로서 어머니로서 최선을 다한 여인입니다. 오늘날도 사라처럼 자녀들을 믿음의 사람들로 키우며 남편을 잘 섬기는 여인들로 인해 하나님의 나라는 세워져 가고 있습니다.

아름답고 사랑스러운 아내, 그러나 제대로 아껴주지 못했던 아내를 떠나보내며 아브라함은 애통해 합니다. 그런데 어떤 사람은 믿는 사람은 슬퍼해서는 안된다고 하며 장례식장에서도 너무 울지 말라고 권면합니다. 그러나 그렇지 않습니다. 내가 사랑하는 사람을 잃었을 때 충분히 슬퍼하고 애도하는 시간을 가져야 합니다. 내가 슬퍼하지 않는 것을 보여주는 것이 믿음이 아닙니다. 슬퍼할 때 충분히 슬퍼해야 합니다. 그렇게 슬퍼하며 애통할 때에 우리의 상한 심령이 치유가 되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슬퍼하는 것은 그 사람에 대한 사랑과 그리움과 존경심을 표현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슬퍼하되 소망을 가지고 슬퍼해야 합니다 (Tim Keller). 믿지 않는 사람들은 그냥 슬퍼하지만 우리에게는 하늘 본향이 기다리고 있고 영원한 생명을 주시는 그분이 기다리고 계시기에 하늘의 소망을 가지고 슬퍼하는 것입니다.

우리 모두 앞서거니 뒤서거니 한 분 한 분 사랑하는 사람들을 떠나보내게 될 것입니다. 그리고 언젠가는 우리 역시 그들의 뒤를 따를 것입니다. 아침 안개 같은 인생은 짧습니다. 사랑하는 이여, 우리 모두 훗날 후회하지 않도록 날마다 서로에게 사랑을 나누며 사십시다. 서로에게 행복을 선물하며 사십시다. 서로에게 축복이 되십시다. 그리고 다가오는 하늘을 준비하며 짧은 이 세상이 아닌 영원한 하늘에 우리의 보화를 쌓아 가십시다. 그날 우리가 흘릴 눈물은 슬픔과 애통의 눈물 이전에 감사와 감격의 눈물이 되도록 오늘 하루 최선을 다해 하늘로 떠날 그 날을 준비하며 사랑만 하며 사십시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