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회자 칼럼: '실망에서 소망으로'(요한복음 6:66~69)

  교회 공동체를 통한 성도의 교제는 하나님의 은혜요 축복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이 가까이 모일 때면 실망은 피할 수 없이 따라오기 마련입니다.  많은 분들이 처음 기독교 공동체에 첫 발을 들여 놓을 때에는 기대와 이상이 있습니다. 그리고 그 이상을 실현하고자 애쓰게 됩니다. 그러나 본회퍼 목사님은 놀랍게도 이러한 종류의 꿈들이 신속히 깨어지도록 만드는 것이 하나님의 은혜라고 합니다. 잘 이해되지 않는 그분의 말씀을 직접 들어보십시다.

  '자신이 원하고 기대하는 어떤 공동체 상을 꿈꾸고 있는 사람은 하나님과 다른 사람들, 그리고 자기 자신에게 그 꿈을 이루어 달라고 요구합니다. 그는 요구하는 자로서 그리스도인의 공동체 속으로 들어가서, 자기 자신의 법을 만들어서는 그 법에 따라 형제들과 하나님을 심판합니다…그는 마치 자신이 기독교 공동체를 만들어 내기라도 한 것처럼, 자신이 꿈꾼대로 사람들을 서로 연결하려고 행동합니다. 그는 자기 뜻대로 되지 않는 것을 실패라고 말합니다. 그 결과 그는 처음에는 형제들을 정죄하고, 그 후에는 하나님을 정죄하며, 마지막에는 절망에 빠져 자기 자신을 정죄합니다…'

  실제로 공동체 안에서는 옳고 그른 것에 매여 전체를 다툼과 분열의 큰 고통 속에 몰아넣는 경우가 많습니다. 완벽주의, 율법주의, 강박관념, 자기 의가 강한 경우, 다 자기가 생각하기에 옳다는 것이 우상이 되어서 자신은 항상 옳다는 함정에 빠져 공동체를 깨뜨리고 스스로를 무너뜨리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면 그러한 실망과 절망이 왜 하나님의 은혜가 될 수 있을까요? 실망의 단계를 거치면서 자신의 인간적인 꿈과 소원이 깨어진 후에야 비로소 하나님 앞에서 자신들의 본연의 모습을 발견하게 되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그때부터 자신의 기대가 아닌 공동체를 향한 하나님의 약속의 말씀을 붙들기 시작하게 되기 때문입니다. 그럴 때에 비로소 그리스도에 근거한 진실된 성도의 교제가 이루어지기 시작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기독교 공동체 속으로 함께 가지고 들어온 인간적인 이상은 참된 공동체를 방해하므로 반드시 깨어져야 하며, 그럴 때 비로소 참된 공동체가 살아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은 예수 그리스도를 우리 공동체의 유일한 기초로 이미 놓아 두셨고, 그분 안에서 모두가 한 몸이 되게 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요구하는 자가 아니라, 감사하는 자요 선물을 받은 자로서 다른 그리스도인들과 공동생활을 누리는 자가 되어야 합니다.

  온 인류를 구원하신 예수님의 십자가 사건이야말로 옳고 그른 것을 뛰어넘은 일입니다. 옳고 그른 것으로 판단한다면 있을 수 없는 일입니다. 옳고 그름의 기준으로는 설명할 수 없는 사랑과 은혜이기 때문입니다. 우리 역시 옳고 그름의 기준 이전에 사랑과 은혜를 누리고 베풀어야 하겠습니다. 그 사람을 비판대신 그 사람을 공동체에 허락하심을 감사해야 하겠습니다. 나같이 부족한 사람에게 귀한 성도의 교제를 허락해 주신 하나님께 감사해야 하겠습니다.

  그렇습니다.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진정한 공동체를 누리는 비결, 실망을 극복하고 소망으로 넘어가는 비결은 요구하는 사람이 아니라 감사하는 사람이 되는 것입니다, 우리 베델 공동체가 서로 요구하는 공동체에서 그저 감사하는 공동체가 되기를 축원합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