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회자 칼럼: '날마다 슬퍼하니라' (삼하 13:30~39)  

  모든 관계의 갈등 중에 가족간의 갈등은 가장 큰 상처와 아픔을 가져옵니다. 다윗은 모든 부귀와 영화를 누리는 왕이었지만, 자기의 아들이 이복 여동생을 범하고, 동생이 형을 칼로 쳐죽이는 끔찍한 비극으로 말미암아 더 이상 감당치 못하고 옷을 찢고 땅에 드러누워 버립니다. 부모에게 이보다 더 큰 고통이 어디 있겠습니까? 다윗은 죽은 맏아들 암논 때문에, 그를 죽이고 도망간 압살롬 때문에 날마다 슬퍼합니다.

  이 모두가 죄의 참혹한 결과입니다. 일찍이 다윗이 방심하다가 우연히 목욕하는 밧세바를 보고 음욕을 품은 그 순간에 이 모든 비극이 시작된 것 아니겠습니까? 적그리스도의 문화가 미디어를 장악하고 있는 오늘날 우리 역시 무엇보다 안목의 정욕을 경계해야 하겠습니다. 우리의 입술에만 파숫군을 세워 달라고 기도할 것이 아니라 우리의 두 눈에도 파숫군을 세워 달라고 기도해야 하겠습니다. 늘 이 땅의 것이 아닌 하늘의 것을 생각해야 하겠습니다.

  다윗이 암논의 죽음에 옷을 찢기 이전에 먼저 암논의 죄악을 보고 마음을 찢었다면, 그래서 암논에게 적절한 처벌을 내렸다면 압살롬이 2년 동안 복수의 칼을 갈지 않았을 것입니다. 형제 간에 피를 부르는 비극은 생기지 않았을 것입니다. 모든 비극은 죄의 시작이지만 정확히 말하자면 덮어 버린 죄로 인한 시작입니다. 당신에게 덮어버린 죄는 없습니까? 밤마다 예수 보혈로 씻고 주무십시다. 아침마다 예수 보혈로 덮으시고 하루를 시작하십시다.

  세상은 온갖 방법으로 죄를 미화합니다. 죄라는 용어 대신에 성정체성, 개인의 자유, 인격의 존중, 인권등의 단어를 사용하여 죄를 합리화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말씀은 무엇이 죄인지를 명확하게 선포하고 있습니다. 죄를 더 이상 죄라고 부르지 못하는 순간부터 죄의 비극은 이미 시작되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는 죄와 맞서 싸워야 합니다. 죄는 사람의 인격을 파괴하고, 관계를 단절하며, 그로 인한 슬픔과 절망을 가져다 줍니다. 죄의 본질은 눈물과 단절입니다. 우리는 결코 이 사실을 잊지 말고 항상 성령의 충만함으로 깨어 죄와 싸워야 하겠습니다. 그리고 반드시 승리함으로 주님이 약속하신 영과 육의 풍성한 삶을 누리며 살아가야 하겠습니다.

  3년 정도 지나자 다윗은 압살롬에 대한 그리움이 간절해지기 시작합니다. 살인, 그것도 자신의 이복 형제를 살해한 죄는 용납될 수 없지만 자식을 향한 아버지의 무조건적 사랑은 그 모든 죄를 다 덮을 만큼 위대합니다.

  이러한 모습에서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사랑을 떠올리게 됩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아들 예수를 십자가에 못 박은 죄인들입니다. 하나님의 원수입니다. 그러나 그분은 상상할 수 없는 사랑으로 우리를 용서하시고 죄악에서 떠나 하나님의 품으로 돌아오기를 기다리십니다.

  다윗이 압살롬을 향한 간절한 감정은 객관적, 이성적으로는 잘 이해되지 않습니다. 하지만 부모는 이해합니다. 부모는 자녀의 잘못을 세상의 법으로 대하지 않습니다. 부모는 오직 자녀가 죄를 뉘우치고 부모에게 돌아오기를 원합니다. 우리 하나님 역시 우리가 자신의 죄를 뉘우치고 당신에게 돌아오기를 원하십니다. 사랑하는 이여, 이제는 돌아가십시다. 그 무한하신 아버지의 사랑의 품으로! 오직 그 분 안에 만이 사랑과 평강과 안식이 있기 때문입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