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회자 칼럼: '비판'    

  자신이나 공동체를 향상시키기 위한 정당한 판단은 필요하지만 형제를 비판하거나 업신여기는 것은 하나님의 심판대 앞에서 책망들을 죄이기에 (14:10) 주님께서도 엄히 금하셨습니다 (비판하지 말라 그리하면 너희가 비판을 받지 않을 것이요 눅6:37).

  본회퍼 목사님은 비판은 기독교 공동체의 생존을 위협하는 위험한 원수이기에 시간을 허비하지 말고 처음부터 이 비판의 죄를 예의주시하며 근절해 버려야 한다고 말씀합니다. 외부의 적은 공동체를 오히려 단결시키지만 내부의 적은 공동체를 파괴하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남을 비판하는 이유는 나를 정당화하기 위해서입니다. 내가 옳다는 것을 정당화하기 위해서 다른 사람을 옳지 않다고 비판한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믿는 우리들은 우리 자신을 정당화하려고 애쓸 필요가 없습니다. 이미 우리는 하나님의 은혜로 의롭다고 인정을 받았고 정당화되었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은혜로 자유롭게 된 것은 (정당화된 것은) 타인을 판단하고 비판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그들을 섬기기 위해서입니다. 그럼에도 계속 남을 비판해서 나를 정당화하려고 한다면 결국 나 역시 주님의 말씀대로 비판을 받는 자리에 서게 될 것입니다.

  우리가 다른 형제를 비판하지 말아야 하는 또 하나의 이유는 그 형제도 하나님이 만드셨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그를 내가 원하는 모습으로 만들지 않으셨고 하나님의 형상대로 독특하고 유일하게 만드셨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은 내가 타인을 비판해서 내게 좋아보이는 모습으로 그를 뜯어 고치는 것을 원치 않으십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공동체 안에서 비판의 말을 금해야 합니다. 실제로 본회퍼 목사님이 섬기던 신학교에서는 한 형제가 부재중인 경우에 그 형제에 대해 말하는 것을 금지하는 규율이 있었습니다. 이러한 규율은 다른 형제를 보호할 뿐만 아니라, 말하는 당사자 자신을 보호해 주는 장치이기도 합니다. 탈무드의 교훈처럼 비판은 그 비판의 말을 하는 사람과 그 말을 듣는 사람, 그리고 그 비판의 대상자까지 동시에 죽이기 때문입니다. 우리 역시 성도의 교제 시간이나 목장 모임 등에서 그 자리에 없는 형제나 자매에 대한 좋지 않은 말은 금하십시다. 어떠한 동기에서든 다른 사람에 대한 비판은 말하지도 말고 듣지도 마십시다.

  그러면 우리가 비판을 받는 당사자가 된 경우에는 어떻게 해야 할까요? 첫째 나 자신은 과연 책망받을 것이 없는 그리스도의 충성된 일꾼인가를 점검하셔야 합니다 (고전4:1,2) 둘째 비판의 말에 너무 동요되지 말고 그것을 매우 작은 일로 여기십시오 (고전4:3). 나를 심판하실 이는 그가 아니라 주님 한 분 이시기 때문입니다 (고전4:4). 마지막으로 전혀 근거가 없거나 잘못된 말이나 오해들은 어떻게 대처해야 할까요? 주님과 (12:24~32) 사도 바울은 그러한 경우에 자신을 해명하셨습니다 (나를 비판하는 자들에게 변명할 것이 이것이니 고전9:1~14). 그러므로 변명 또는 해명이 결코 잘못된 것은 아닙니다. 다만 가장 은혜로운 것은 본인이 직접 변명하기 보다는 그분을 잘 아는 분들이 옆에서 변명해 주는 것이 제일 좋습니다.

  짧은 인생, 서로 사랑하며 살기에도 바쁜데 왜 미워하며 살아야 하겠습니까? 사랑만 하며 사십시다. 위로만, 격려만, 칭찬만 하며 사십시다. 하나님의 나라는 성령 안에서 의와 평강과 희락을 누리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