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양 칼럼: ‘저자의 말’ |
필라델피아 시내를 처음 방문하던 날,
시청 앞에 우뚝 서 있던 워너메이커 동상을 보았을 때의 감격과 기쁨은 지금도 말로 표현할 길이 없다.
그때 동상 앞에 서서 얼마나 오랜 시간 동안 꼼짝 않고 있었는지 모른다. 벅차오르는
감동에 나도 모르게 동상만 하염없이 바라보고 있었다. 마치 워너메이커가 나를 내려다보며 미소 짓는 것처럼
보였다. 부족하지만 하나님의 말씀이 담긴 성경을 사랑하자고 외치고 다니던 나에게 힘을 내라고 다독여 주는
것 같았다. 그 다음날에도 나는 그곳에 가서 워너메이커의 미소 짓는 얼굴을 바라보며 그 모습을 마음에
새기고 또 새겼다. 성경으로 맺어진 인연이라고 하면 너무 거창할까?
그러나 나는 감히 존 워너메이커와 나의 만남은 성경이 이어준 것이라고 말하고 싶다. 성경에 파묻혀 지내던 세월 동안 나는 무수히 많은 사람들을 만났다. 성경 속에서 삶의 지혜를
배우고 위로와 힘을 얻을 뿐만 아니라 그것 자체가 인생의 중심이 되고 지표가 됐던 사람들..., 그들의
삶은 나를 충분히 뒤흔들어 놓았다. 그렇게 해서 만나 첫 사람이 링컨이었고, 두 번째로 나를 감동의 도가니로 밀어 넣은 인물이 워너메이커였다. 존 워너메이커, 내가 그에
대해 알고 있었던 것은 벽돌 한 장으로 교회를 짓게 만든 소년이라는 것, 백화점 왕으로 성공하고 훗날
체신부 장관이 된 그가 어느 인터뷰에서 “장관은 부업이고 주일학교 교사가 본업이다”라는 유명한 말을 남겼다는 이야기, 자신의 인생에서 최대 투자는 성경이었다고 고백한 사람,
그리고 우리 한민족을 위해 종로2가 YMCA 건물을 지어준 장본인이라는 몇 가지 단편적인 이야기들뿐이었다. 그러나 그에 대한 짧은 조가 이야기들은 그에 대한 호기심을 일으키고도 남았다.
더군다나 성경을 사랑한 사람이었고, 특히 우리나라와 연관이 있다는 사실 때문에
벽안의 외국인 워너메이커가 더욱 가깝게 느껴졌다. 어느 날 나는 백화점 왕으로 알려진 존 워너메이커의 일생을 좀더 깊이 연구해 봐야 겠다는
결론에 이르렀다. 그가 태어난 필라델피아를 찾아가 그의 채취가 남아 있는 구석구석을
돌아보면서 그를 알아보고 싶었다. 정말 그렇게 내 인생의 일부를 투자해도 아깝지 않을 것 같다는 확신이
들었다. 바쁜 모든 일을 내려놓고 나는 그 결심을 감행헀다. 우리
민족을 위해 거액의 돈을 기부하여 YMCA 건물을 지어준 그 사람에게 대한민국의 한 사람으로서 자그마한
보답이 될 수 있을 거라는 생각으로 그의 고향을 찾은 것이다. (중략) 존 워너메이커는 실로 보석 같은 아름다운 신앙인의 삶을 살았다.
그처럼 의미 있는 인생을 살 수 있는 사람이 몇이나 될까. 나는 그에 대한 자료를
수집하고, 그것을 토대로 나의 감동을 담아 한 페이지 한 페이지 글을 쓰면서 울고 또 울었다.
그의 인생이 아름다워서, 그의 사랑에 감동되어서, 그리고 그의 열심과 헌신에 나 자신이 부끄러워져서 끊임없이 눈물을 흘렸다. 일생토록 성경을 사랑하고, 교회와 어린이
사역에 헌신한 평신도 기업인의 모습은 오늘날 우리에게 신앙인의 모델이 되고도 남았다. 67년간 주일학교
교사로 봉사하고 헌신했던 사람, 많은 교회를 설립하고 세계 최대의 주일학교를 이룬 사람.
(중략) 그가 이루어낸 삶은 그가 만든 것이 아니라, 성경이 만들고 하나님이 만든 것이었다. ‘성경이 만든
사람 백화점 왕 워너메이커’ (생명의 말씀사) 중에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