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양 칼럼: ‘나의 찬송을 부르라’ |
우리는 성경에서 예수님이 전문적인
음악인을 고용하여 사역하셨다는 기록을 볼 수가 없습니다. 또한 세례 요한의 사역에서도 성가대와 각종 악기의
소리는 상상하기가 힘들지만 성령의 역사는 놀라운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이러한 사실들이 하나님 사역에 있어서 음악의 중요성을
악화시키지는 못합니다. ‘하나님께서 찬양을 기뻐하신다’는 사실은
성경 전체의 중요한 한 주제라 하여도 지난친 말이 아닐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인간을 창조하신 목적이 바로
하나님을 찬송케 하는 데 있다고 이사야 전지자는 기록하고 있습니다. “이 백성은 내가 나를 위하여 지었나니
나의 찬송을 부르게 하려 함이니라”(사 43:21). 이 말씀은 절대자의 이기적인 마음에서 나온 말이 아닙니다.
피조물은 찬양을 통하여 하나님과 인격적인 관계를 맺을 수 있습니다. 이 관계는
사업적인 관계가 아니라 영원한 생명의 관계입니다. 찬양은 하나님과 관계를 맺는 한 방법입니다.
진실한 찬송은 진실로 생명이 무엇인가, 진정한 삶이 무엇인가를 아는 자만이 드릴
수 있는 행위입니다. 생명 감각이 있는 자는 하나님을 찬양할 수 있습니다. 그러ㅡ로 시편 기자는 말합니다. “죽은 자가 여호와를 찬양하지 못하나니 적막한데 내려가는
아무도 못하리로다”(시 115:17~18). “호흡이 있는 자마다
여호와를 찬양할지어다 할렐루야”(시 150:6). 남 왕국 유다의 히스기야 왕은 죽을 병에서 다시 일어나 15년간의 생명을 연장받았습니다. 그 후 그는 자신의 생명을 귀히 여기게 되었고
하나님을 진정으로 찬양하게 되었습니다.(중략) 찬송과 생명은 신비로운 관계에 있습니다. 하나님은 히스기야 왕에게 생명을 주고 히스기야 왕은 진정한 마음으로 하나님을 찬양하게 되었습니다. 그렇다고 이전에 히스기야 왕이 하나님을 찬양하지 않았겠습니까? 그는 어려서부터 정규적으로
성전에 나가고 헌물도 드렸을 것입니다.백성들과 함께 찬양도 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께 찬송한다는 것이 무엇인지 알지 못했습니다. 산다는 것이 무엇인지 몰랐었기
때문입니다. 겉으로는 산 것 같은데 속으로는 죽어 있었기 때문입니다.
이제 사신 하나님을 개인적으로 체험한 히스기야 왕은 오직 산 자가 나와 같이 하나님께 찬양해야 한다고 선포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요한계시록에서 지상에서의 무서운 심판과는 달리 하늘
나라에서는 밤낮 쉬지 않고 찬송 소리가 흘러나오고 있는 것을 보게 됩니다. 이 찬송 소리는 보좌 주위의
네 생물과 이십사 장로의 찬송 소리요(계 4:8~11), 땅에서
구속함을 얻은 성도들의 새로운 찬송입니다(계 14:3). 구원받은
자, 즉 산 자의 영원히 할 일은 사신 하나님을 찬양하는 일입니다. 찬송과 생명의 관계는 연구하면 할수록 더욱 깊고 오묘한
영적 세계로 우리를 인도합니다. 우리의 궁극적인 목표인 하늘 나라에는 이 두 가지 것으로 가득 차 있습니다.
하나님을 찬송하는 방법이 꼭 음악이어야 한다고 주장하고 싶지는 않습니다. 우리의
삶 전체를 통하여 하나님을 찬양해야 하기 때문입니다. 어떤 사람은 기도를 통하여, 어떤 사람은 시련을 통하여, 어떤 사람은 봉사를 통하여 하나님을 찬양할 수 있습니다. 나의 찬송을 부르라 (규장문화사) 중에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