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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양 칼럼: ‘제1장 루이빌 사역’ – 남은 불꽃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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큰 기대와 큰 역사 (계속) 오후에는 흑인형제들을 위한 집회가 글로브스링크(Globe’s
Rink) 실내 스케이트장에서 열렸고, 백인형제들 중 노무자들을 대상으로 한
집회가 리이더크란츠 홀(Liederkranz Hall)에서 열렸다. 공공도서관의 강당에서 열린 젊은이 전용 집회에는 젊은이들에게만 표를 발급했음에도 불구하고 연령층을 불문한 사람들이 몰려들었다.
마콜리 극장의 집회는 모든 사람에게 개방되었다. 휘틀-블라스 두
부흥사의 집회는 3월 12일 금요일 집회로 막을 내렸다.
금요일 집회는 기도회로 온종일 계속되었다. 한 신문은 이렇게 보도했다.
“기도회에 만 명이 참석하다. 유례를 찾을 수 없는 종교적 열정분출.”
기도회는 두 번의 대형집회로 절정을 이루었다. 저녁 6시 반 집회는 원래 새 신자만 참석하게 되어있었으나 정작 7시 반 두 번째 집회를 시작하려
문을 여니 “수천 명의 군중이 앞 다투어 밀려들어와 순식간에 자리를 메워버렸다. 3천명의 군중이 혼잡을 이루고 밀려들어왔고 또 3천 명은 들어갈리수도 없었다.” 휫틀의 설교직후 기립한 군중들은 “주 예수 이름 높이어”를 합창하였다. 블리스의 권면에
따라 함께 손잡은 목사님들의 줄이 강단 위를 가득히 메웠다. 바야흐로 루이빌의 성도들이 다시금 십자가아래
하나로 연합하는 놀라운 화해의 역사가 일어났던 것이다. 남은 불꽃 부흥집회는 끝났다. 그러나 일단
발동이 걸린 심슨은 이제 막 시작된 부흥운동에 급작스런 제동을 걸려 하지 않았다. 부흥집회의 마지막 날
저녁 심슨은 주일 저녁 대중짐회는 계속될 것임을 선언했다. 이를 위해 체스넛스트릿 장로교회는 이미 공공
도서관 강당을 빌려 놓았던 것이다. 심슨 목사는 다른 교회도 심슨의 제안에 부응하여 함께 집회를 하기를
원했다. 그러나 다른 교회들은 각자대로 부흥을 이어가기로 결정하였다. 루이빌 지방신문은 심슨 목사가 일반대중을 대상으로 한 집회를 계속하기로 한 것을 보도하면서 심슨의 진의가 “복음을 듣고자 하는 소원은 있으나 정규교회에 출석하지 못하는 사람들”을 감안한 것이라고
밝혀 말했다. 바야흐로 심슨의 마음속에 품었던 소원, 즉 정규교회에서
외면 받았지만 하나님에게서는 외면 받지 않은 무교회 대중들에 대한 관심이 이제 표출하기 시작했던 것이다. 비록 그 길이 아무도 따르지 않는 외로운 길일지라도 말이다. 신문은 후일 심슨의 가장 큰
강점으로 판명되는 일면에 대해 보도했다. “무엇보다 좋았던 것은 심슨 목사가 인도하는 집회의 목적이 교단이나
파당적이 아니고 복음적이고 범 교회적일 뿐 아니라 모든 복음주의 목사와 교회들이 다 환영받는 집회였다는 사실이었다.” 휫틀-블리스 부흥집회직후 일어난 사건으로 당시로는 사소한 일이었지만 심슨의 사역에 전환점이
되는 사건이 있었다. 켄터키 주 렉싱턴 시의 목사님들이 심슨 목사에게 일련의 부흥집회를 인도해달라고 요청했던
것이다. 수년 전에도 동료 장로교회 목사님이 심슨 목사에게 비슷한 요청을 한 적이 있었지만 심슨 목사는
단호히 거부했던 적이 있었다. “저는 부흥회 인도를 할 수 없습니다. 왜냐하면 저는 부흥사가 아니고 목회자이기 때문입니다. (계속) C&MA를 통한 백년이상의
하나님역사 (C&MA 한인총회)중에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