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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양 칼럼: ‘제1장 루이빌 사역’ – 우리를 박차고 (2)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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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론 이 문제가 심슨과 성도들 간에 불화를 가져오지는 않았고 우호적인 관계는 계속유지되었다.
그러나 과거 휫틀-블리스 부흥집회와 그 후 교회주관으로 계속된 부흥집회 당시의
분위기는 이미 찾아볼 수 없었다. 심슨 목사는 이제 하나님께서 루이빌 사역에서 해방시키시는 손길을 느끼기
시작했다. 이로부터 18개월 후 우리를 박차고 자신의 꿈을 펼칠
더 넓은 세상을 향하여 믿음의 발길을 옮기게 되었다. 루이빌사역의 의미:
새로운 방향정립 심슨의 삶에 있어 루이빌 시절은 방향정립의 게기였다.
그의 메시지, 그의 사역, 그가 시작한
무브먼트 어느 하나를 막론하고 루이빌 시절에 그 뿌리를 두지 않은 것이 없다. 루이빌에서 성령세례를 체험한
것이 계기가 되어서 그리스도를 새롭게 조명하게 되었고 남북전쟁의 상처로 찢어지고 갈라졌던 루이빌에 부흥과 화해의 불길을 지필 수 있었다.
이 부흥집회 후 일어난 여러 가지 사건들이 향후 심슨의 사역에 대한 태도와 세계 안에서의 교회의 역할에 대해 크나큰
변화를 가져왔던 것이다. 이 변화를 네 가지로 요약할 수 있겠다:
(1) 심슨의 소명의식의 변화였다. 목회자로 뿐 아니라 부흥사로 부름을 받았음을
깨달았다. (2) 심슨의 교회관의 변화였다. 기존 교단 소속의 전통적
교회관 뿐 아니라 초교단, 초교파 교회관을 가지게 되었다. (3) 심슨의 목회관의 변화였다. 전통적으로 부유하여 교회에 속한 교우들 뿐 아니라 가난하고 갈
교회가 없던 소외된 대중을 품는 목회관을 가지게 된 것이다. (4) 선교 비전의 확대였다.
단순한 국내 전도활동뿐 아니라 세계를 품는 선교관이 그의 비전이 된 것이다. 6년에서 1개월이 부족한 기간 자신의 영혼과 육신을 송두리째 바쳤던
정든 목회지 루이빌. 자신을 그토록 존경하고 사랑하던 성도들의 모습을 뒤로하고 심슨 목사는 발길을 다음
목적지로 옮겼다. 해밀턴, 루이빌 두 사역지에서 심슨은 동료 사역자
가운데서 발군의 업적을 세워 하나님이 특별히 세우신 사역자임을 입증하였다. 캐나다 온타리오 서부 인적이
드문 농장출신 심슨도 그 동안 엄청난 변화를 겪었다. 그러나 따지고 보면 심슨의 성장은 부친 제임스와
모친 제인의 경건한 가정과 청교도적 전통에 기인한다고 할 수 있겠다. 그러므로 다음 장은 슴슨의 출생배경부터
성장기의 삶과 해밀턴 사역을 조명함으로 그의 비전의 뿌리를 찾으려 한다. (제1장 마침 / 계속) C&MA를 통한 백년이상의
하나님역사 (C&MA 한인총회)중에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