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양 칼럼: 우리는 예배자로 부름받았습니다 (4)

제가 이 자리에서 여러분에게 분명히 말씀드립니다. 아마 마르틴 루터도 믿음으로 말미암아 의롭게 된다는 진리를 저보다 더 강하게 믿지 않았을 것입니다. 저는 우리가 믿음으로 말미암아 의롭게 된다는 사실을 믿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아들을 주요, 구세주로 믿을 때 구원받는다는 사실을 믿습니다. 그런데 요즈음은 구원받는 것을 자동식으로 생각하는 치명적인 현상이 나타나고 있어서 여간 괴로운 게 아닙니다.

여기서 자동식이라는 말은 바로 이런 것입니다. “동전 넣는 구멍에 백 원짜리 신앙을 접어 넣고 손잡이를 잡아 당겨라. 그러면 구원이라는 자그마한 카드가 나올 것이다. 그것을 지갑에 집어 넣고 가라!” 그러면 그 사람은 , 저는 구원받았습니다라고 말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럼 그 사람은 자기가 구원받았다는 사실을 어떻게 알까요? “어떻게 아느냐고요?” 저는 백 원짜리 신앙을 집어 넣고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한 다음 그 카드 뒷면에 서명했거든요.”

좋습니다. 카드에 서명한다는 것 자체는 아무 잘못이 없습니다. 그것은 적어도 누가 구원에 대해 알아보려 했는지를 아는 데 도움이 될 테니까요. 그렇지만 형제 자매 여러분, 우리가 하나님께 나아오고, 신앙을 가지며, 구원을 받는 이유는 모두 다 하나님을 예배하고 경배하기 위한 것입니다. 우리는 자동적인 그리스도인, 쓸모없는 그리스도인, 도장처럼 그리스도인이라는 명패만 찍힌 그리스도인이 되기 위해 하나님께 나아오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은 우리 개개인이 인격적으로 하나님과 활기찬 교제를 나누는 자녀가 되게 하시려고, 우리의 온 마음을 다해 그분을 사랑하며 거룩한 아름다움을 지니신 그분을 예배하는 자녀들이 되게 하시려고 우리를 구원해 주셨습니다. 그렇다고 해서 우리 모두 다 똑 같은 에배를 드려야 한다는 뜻은 아닙니다. 성령은 어떤 사람의 선입견이나 어떤 공식에 의해 역사하는 분이 아닙니다.

그러나 저는 다음과 같은 사실은 알고 있습니다. 즉 하나님의 기름 부으심으로 성령이 우리에게 임할 때, 우리는 하나님을 예배하는 자들이 된다는 사실입니다. 물론 이 사실을 용납하기 힘든 사람들도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모든 은혜와 모든 사랑과 모든 자비와 모든 진리의 하나님 되신 여호와를 진정으로 예배하고 경외한다면, 우리는 다른 모든 사람의 마음에 들만큼 그렇게 조용히 있지 못할 수도 있습니다.

누가는 첫 번째 종려 주일에 수많은 군중이 다음과 같이 했다고 적고 있습니다. ‘이미 감람산에서 내려가는 편까지 가까이 오시매 제자의 온 무리가 자기의 본 바 모든 능한 일을 인하여 기뻐하며 큰 소리로 하나님을 찬양하여 가로되 찬송하리로다 주의 이름으로 오시는 왕이여 하늘에는 평화요 가장 높은 곳에는 영광이로다 하니 무리 중 어떤 바리새인들이 말하되 선생이여 당신의 제자들을 책망하소서 하거늘 대답하여 가라사대 내가 너희에게 말하노니 만일 이 사람들이 잠잠하면 돌들이 소리지르리라 하시니라’(19:37~40).

여기서 다음 두 가지 사실만 지적하겠습니다. 첫째, 물론 우리가 소란을 떠는 것이 반드시 하나님을 예배하는 것은 아니지만, 적어도 예배드리는 소리는 우리 귀에 들리는 경우가 자주 있다는 점입니다. (계속)

 

        하나님이 원하시는 진짜 예배자 (생명의 말씀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