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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양 칼럼: ‘꼬리에 꼬리를 무는 성탄절 이야기’ (4)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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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cene 2. 베들레헴 탄생 요셉과 마리아가 베들레헴으로 갔을 때 사람들이 많아서 여관을 구할 수가 없었다.
결국 아기 예수님을 강보에 싸서 구유에 뉘었다고 성경은 전하고 있다(눅 2:6~7).
오늘날과 같이 상업적인 숙박시설을 언급할 때는 ‘주막’이라는 의미의 단어를 사용했다(욱 10:34). 그런데
예수님이 태어나신 곳은 그런 곳이 아니었던 것 같다. 아마 요셉의 친구나 친척 집이었을 거라고 생각할
수 있다. 당시 농부의 집은 사람들과 가축이 같이 자는 구조였던 것 같다. 가축이 자는 곳은 조금 낮았다. 마리아와 요셉은 손님이었는데 사람들이 많아서 태어난 아기를
가축의 여물통에 뉘었던 것 같다. 예수님의 탄생은 예루살렘을 발칵 뒤집어 놓았다.
천사들이나 목자들이 기쁨의 찬양을 불러서 그랬을까? 아니다. 동방에서 박사들이 예루살렘으로 온 것이다. 별을 연구하던 사람들이 특별한 별을 보고 유대인의
왕이 탄생했다고 생각했다. 먼 거리를 이동하여 예루살렘에 와서 “유대인의 왕으로 나신 이가 어디 있느냐?”라고 물은 것이다. 그 말을 듣고 헤롯왕과 온 예루살렘에 소동이 일어났다. 당시 유대인의 왕은 헤롯이었기 때문이다.
헤롯은 로마의 원로원으로부터 그 칭호를 얻었다. 그는 자기 자리를 지키기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았다. 위협이 된다고 생각하면 아내와 아들도 죽일 정도였다. 그런데 유대인의 왕이 태어났다며 이방 지역에서 사람들이 온 것이다. 동방박사라고 불리는
사람들은 몇 명이었을까? 우리는 흔히 세 사람이라고 생각한다. “동방박사 세 사람 귀한 예물 가지고 산을 넘고 물을 건너 별 따라 왔도다”라는 찬양 가사도
있다. 동방박사가 세 사람이라고 생각하는 이유는 무엇이었을까? 그들이
드린 예물이 황금, 유향, 몰약이었다고 성경이 말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한 사람이 하나씩 선문을 드렸다고 생각한 것이다. 그러나 당시 먼 이방
지역에서 세 사람이 오랜 기간에 걸쳐 여행하는 것은 목숨을 건 행동이라고 볼 수 있다. 아마 많은 사람이
왔을 가능성이 커 보인다. 그래서 그들의 등장에 예루살렘이 발칵 뒤집혔던 것이다. 이방인이었던 박사들은 아기 예수님의 탄생을 축하하기 위해 먼 곳에서부터 왔다.
그런데 당시 왕이었던 헤롯은 예수님을 죽이려고 했다. 물론 천사의 지시로 위기를
모면했지만, 베들레헴 인근의 두 살 아래 사내아이들이 학살당하는 끔찍한 일이 벌어졌다. 만왕의 왕이신 예수님의 탄생을 대하는 상반된 모습이다. 그렇다면 과연 나는 예수님을 어떻게
맞이하고 있는지 이번 기회에 생각해 보면 좋을 것 같다. Scene 3. 예수 탄생의 첫 증인들 우리가 타임머신을 타고 2천 년 전
그 시점으로 돌아갈 수 없지만, 그때 아기 예수님의 탄생 현장을 목격한 최초의 증인들에게 감정 이입을
하면서 성탄절 연극마다 단골손님으로 환대받는 인물이 동방박사와 목자들이다. 마태복음은 전자를 ,
누가복음은 후자를 그 주인공으로 등장시키고 있다. 왜 이 두 복음서가 최초의
크리스마스의 현장 증인으로 상이한 인물을 설정했는지 확실하게 증명할 수 없을 것이다. 하지만 아마도 마태복음과
누가복음을 쓴 저자 또는 그 이면의 신앙 공동체가 추구한 지향점이나 신학적 목표의 차이가 ㅡ런 차이와 연계되는 게 아닐까 추론하는 것이다.
(계속) 빛과 소금 No. 493 (두란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