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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양 칼럼: 제2장 비전의 뿌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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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가 자라면 집을 떠나지만 자란 가정의 영향을 떠나느 것은 아니다. 1843-1873년 시대적 배경 [1장에서 심슨의 루이빌 사역에 대해 우선 논의하였다. 왜냐하면 루이빌 사역기간은 후일 심슨의
사역에 가장 결정적인 사건이 일어났던 기간이었기 때문이다. 순서가 뒤바뀌었지만 2장에서는 1843년 심슨의 출생부터 루이빌로 떠나기까지의 기간을 다루고자 한다.
우선 당시 시대적 배경에 대해 상고해 보자.] 1880년 미국 대통령선거가 있던 해를 사람들은 흔히 “복음주의자들의 해”라고 부른다. 이 표현을 잘못 이해하면,
선거가 기독교인들을 미국인의 삶에 주류로 끌어들이는 계기가 된 것처럼 생각할 수도 있다. 그러나 이는 완전한 오해이다. 사실은 19세기 전체가
“복음주의 시대”라고 불릴 만큼 복음주의의 역사가 활박했던 세기였다.
그러면 과연 복음주의란 무엇인가?
복음주의란 표현은 기독교의 몇 가지 중요안 교리를 공유하는 것을 지칭하는 바, 이 중 중요한 교리는 다음과 같다: (1) 복음적 성경론을 강조한다. 성경말씀은 하나님의 계시이며 믿는 자의 삶에 절대적인 권위를 지닌 책이다. (2) 복음적
신론을 강조한다. 하나님의 절대적 주권을 인정하는 것이다. (3) 복음적 구원론을 강조한다. 모든 믿는 자는 성령으로 거듭날 뿐 아니라 인격적으로 성결해져야 하며
자신의 행동에 대해 책임을 져야 한다. 19세기는 기독교 역사상 중요한 무브먼트가 많이 일어났을
뿐 아니라, 위대한 영적 지도자들이 속출했던 시대이기도 했다. 영구과
북미출신의 뛰어난 복음주의 지도자들의 영향은 현재도 상존한다. 우선 영국출신의 복음주의 지도자들의 예를
들어보자. 일리엄 글레드스턴(1809-98)은 옥스퍼드대학을 졸업한 후 원래 목회자가 되려 했으나 아버지의
권유로 정계에 나서서 그 후 60년간 영국정계의 지도자로 군림했다. 그는 영국의 수상만도 4차례 역임한 복음주의자였다. 시골 농부의 아들 조지 윌리엄스는 1844년 약관 22세에 YMCA를 창설하였고 윌리엄 부스(1829-1912)는 아내 캐서린과 함께 1878년 구세군을 창설하였다. 독일출신인 조지 뮐러(1805-98)는 영국에서 수천 명의 고아들을 양육하며 믿음과 기도의
능력이 얼마나 무한한지를 온 천하에 보여 주었다. 헛슨 테일러(1832-1905)는 1865년 중국내지선교회(China Inland Mission)를 설립하여 중국선교에 불길을 붙였다. (계속) C&MA를 통한 백년이상의 하나님역사 (C&MA 한인총회)중에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