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양 칼럼: 2장 비전의 뿌리 (3)

심슨의 표현 중 “somewhat stern mould”라는 표현을 이해하자면 당시의 언약장로교회(Covenanter Presbyterianism)에 대해 이해가 선행되어야 한다. 17세기 영국이 스코틀랜드를 지배하던 시절 영국은 영국 국교에 속하지 않은 사람은 누구든 국교로 전향하거나 죽음을 택하도록 강요하였다. 그러나 영국의 박해가 심하면 심할수록 스코틀랜드의 카버넌터들의 믿음은 더욱 견고해졌고 극보수로 치달았다. 1775년 심슨 일족이 스코틀랜드에서 캐나다로 이민 올 때에 이들은 바로 이 극보수신앙을 가지고 온 것이다. 핍박 속에 견고해진 이들의 신앙은 이들이 정착한 프린스에드워드(Prince Edward)섬의 가혹한 겨울날씨와 척박한 환경 가운데 더욱 견고해졌다.

그렇다고 알버트 심슨의 가정이 무미건조하고 엄격하기만 한 가정이었다는 말은 아니다. 심슨의 부모님인 제임스와 제인은 베이뷰에 위치한 자신들의 가정을 부족한 것 없이 꾸밀 줄 아는 사람들이었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심슨의 가정이 믿음과 사랑이 차고 넘친 곳이었다는 사실이다. 18431215일 제임스와 제인의 네 번째 자녀로 태어난 알버트 심슨은 많은 자녀가운데서 자람으로 인해 어린 시절부터 균형 잡힌 인품은 바로 다른 사람을 용남하는데서 오는 것임을 알았다. 어머니 제인은 아홉 명의 자녀를 낳았으나 네 자녀는 일찍 잃어버리고 다섯 자녀만 키우게 되었다.

알버트에게 큰 영향을 끼친 분들 중 부친 제임스를 뺄 수 없다. 알버트의 부친 제임스 심슨은 조선업과 무역업에 종사하여 성공적인 사업가가 되었지만 후일 재정이 어려워져서 사업을 처분하고 섬을 떠나 본토로 이주했다. 온타리오 주 서부 체탐 시에 올 때에는 원래 동업자와 함께 조선소를 시작할 계획이었지만 전염병 창궐로 다른 지역으로 다시 이사해야 했다. 체탐 시는 알버트의 어머니 제인에게 가슴 아픈 추억만 남긴 곳이었다. 왜냐하면 바로 그 곳에서 많은 자녀들을 잃었기 때문이었다. 특히 어린 마가렛을 잃고나서 제인은 더 이상 체탐에 살다가는 남은 자녀까지 잃을 까 두려워했다. 아내 못지 않게 큰 충격을 입은 제임스는 체탐에서 9마일 거리의 시골에서 농사지을 땅과 통나무집을 구매하여 이사하였다. 제임스는 이 이사로 인해 많은 어려움을 겪었다. 왜냐하면 제임스는 농장 일을 모르는 목수였기 때문이다. 이러한 어려움에도 불구하고 제임스는 최선을 다해 집을 가꾸고 땅을 경작하였다. 통나무집에다 호도나무를 가공하여 아름다운 가구를 짜서 잘 꾸미니 통나무 집이 그런 대로 살만한 집이 되었다.

알버트의 부친 제임스의 성품이 어떠했는지 알버트의 누나 루이스의 말을 들어보면 알 수 있다. 제임스는 85세로 세상을 떠날 때까지 한번도 루이스가 보는 앞에서 화를 내거나 불손한 말을 한 적이 없었다고 한다. 심지어는 다른 사람들이 제임스에게 해꽂이를 해서 마음이 상하는 일이 많았음에도 그러했다. 알버트의 형 제임스는 부친의 관 옆에서 이렇게 말했다. “여기에 다른 사람에게 한번도 해를 끼친 일이 없는 분이 계십니다.” (계속)

 

C&MA를 통한 백년이상의 하나님역사 (C&MA 한인총회)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