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양 칼럼: 2장 비전의 뿌리 (4)

모친 제인이 알버트에게 끼친 영향은 더욱 컸다. 도회지에서 시골로 이사한 것이 제임스에게 많은 어려움을 가져왔지만 제인의 고생에 비하면 차라리 나았다. 왜냐하면 제인은 프란스에드워드 섬의 국회의원의 딸로 부유한 가정에서 안온하게 자란데다 항상 지식층들과의 교류가 끊이지 않았기 때문이다. 섬세하고 시적이며 발랄한 사교적 성품을 지닌 여인이 이런 시골구석에서 외롭게 살려니 마치 독방에 갇힌 죄수처럼 고통스러웠을 것이다. 후일 알버트 심슨은 어머니에 대해 회상했다. “어린 시절 어머님의 방안에서 들려오는 울음소리를 자주 들었습니다. 그럴 때마다 저는 자리에서 일어나 어머님을 위로해달라고 하나님께 기도했습니다. 사실 그때는 아직도 하나님이 누구인지도 모를 때였지만 말이지요.” 이러한 개인적인 고뇌와 부서진 꿈에 대한 좌절가운데서도 제인 심슨은 어머니로서 아내로서 가정의 모든 필요한 부분에 부족함이 없도록 최선을 다하되 사랑과 헌신으로 하였다. 알버트 심슨이 책을 좋아하고 미적 감각이 뛰어난 것은 아마도 어머니 제인의 영향이었을 것이다.

                      

                        엄격한 종교생활

 

어머니 제인은 갓난 애기 알버트를 일찍 하나님께 사역자로 헌신하였으나 아들에게는 이를 비밀로 하였다. 왜냐하면 나중에 심슨이 스스로가 하나님의 뜻에 따라 헌신하는 것을 원했기 때문이었다. 심슨의 인생에 지대한 영향을 가져올 사건은 일찍부터 터졌다. 당시 캐나다 최초의 선교사로 사우스시 아일랜드로 파송되어 가던 길에 방문한 죤 게디 목사가 유아세례와 동시에 알버트를 선교사로 헌신했던 것이다. 이러부터 21년 후 안식년을 맞아 게디 선교사는 심슨을 방문했을 때, 유아세례 때의 헌신의 기도를 다시금 상기시켰다.

심슨 가정의 믿음생활은 엄격한 청교도적 원칙에 입각해서 진행되었다. 주일마다 심슨 일가는 정장을 차려입고 9마일 떨어진 교회까지 예배를 드리기 위해 터덜거리는 수레를 타고 가야 했다. 부득이한 사유로 교회출석이 불가능한 경우에는 온 가족이 거실에 함께 모여 벡스터가 쓴 성도의 안식(Saint’s Rest)이나 도드리지가 쓴 믿음의 시작과 발전”(Rise and Progress of Religion in the Soul)등의 책에서 발췌한 내용을 몇 시간이고 함께 상고하곤 했다. 주일 오후에는 아이들마다 세례문답을 하게 하되 한 주에 몇 개씩 하게하여 1년이면 150개의 문답을 다 마치게 하였고 일단 끝나면 처음부터 다시 시작하게 하였다. 주일의 남은 시간은 경건의 시간을 갖도록 하였다. 만일 이를 어기면 가차없는 벌을 받았는데 즉시 벌을 주지는 않고 다음날인 월요일에 벌을 시행하였다. 왜냐하면 주일은 안식일이라 안식일에 벌을 주는 것은 안식일을 범한다고 믿었기 때문이다.

어느 주일 오후였다. 날씨가 너무나 화창하고 경관이 아름다워 한창 나이의 알버트는 좀이 쑤셔서 집안에 있을 수가 없었다. “유혹을 견디다 못해 살짝 집밖으로 빠져나가서 오랜만에 도둑질한 자유를 즐기며 마당을 망둥이처럼 설치며 뛰어다니다가 그만 아버지에게 들켜버렸습니다.” (계속)

 

C&MA를 통한 백년이상의 하나님역사 (C&MA 한인총회)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