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양 칼럼: 2장 비전의 뿌리 (5)

집안으로 불려 들어간 알버트에게 아버지는 월요일이 되면 체벌을 시행할 것이라고 단호하게 선언했다. 약속대로 매를 심하게 얻어맞은 후에 형 하워드가 알버트를 살짝 불러서 어떻게 하면 앞으로 체벌을 모면할 수 있는지에 대해 귀띔을 해 주었다. 심슨은 후일 어떻게 자기가 하워드의 귀띔대로 하다가 무슨 결과가 왔는지 고백했다. “당시 하워드의 귀띔을 거부할 만큼 제 심령이 성결치 못했던 것이 유감입니다. 아니나 다를까 또 매 맞을 짓을 했고 아버지가 매를 들고 오셨지요. 하워드가 그르쳐 준대로 침대에서 살짝 빠져 나와서 자리에 앉아 엄숙한 표정으로 짐짓 경건의 시간을 가지는 체하고 있었습니다. 지금도 당시 아버지의 눈길이 눈앞에 생생합니다. 아버지는 식탁 옆에 조용히 앉으셔서 안경너머로 제가 정말 진지하게 경건의 시간을 갖고 있는지 확인하는 것 같은 눈길로 저를 내려다 보셨어요. 제가 경건의 시간을 마친 후 아버지는 조용히 자리를 빠져나가 볼일을 보셨고 체벌에 대해서는 재론하지 않으셨어요.”

엄격한 안식일 준수와 어린 알버트의 가짜 경건의 시간 등을 감안할 때 심슨 가정의 종교적 영향은 하나님을 향한 알버트의 태도에 발전을 주기보다는 오히려 걸림돌이 되었다고 볼 수도 있다. 여러 가지 악영향을 끼칠만한 요소를 알버트의 아버지 제임스의 가정에서 발견할 수 있다: (1) 고루한 장로교회의 장로이신 아버지의 엄격한 신앙생활: (2) 매정할 정도의 세례문답훈련: (3) 긍정적이고 즐거운 삶의 측면을 무시한 율법적인 습관들. 심슨 목사의 아버지 상은 심슨의 후일 회상에 여실히 드러났다. “아버지만 생각하면 제 마음에 아직도 생생하게 떠오르는 모습이 있습니다. 해 뜨기도 전에 일어나셔서 거실에 촛불을 켜고 오랫동안 경건의 시간을 가지시는 아버지의 모습입니다.” 이런 아버지 상을 가진 알버트가 하나님 아버지께 진정으로 친밀한 관계를 가질 가망은 도통 없어 보였다. 이러한 아버지의 이미지는 알버트의 심령을 경외함으로 채웠기에 부자간의 간격과 알버트와 하나님과의 간격을 친밀과는 거리가 먼 관계로 만들어버렸던 것이다.

어린 시절 아버지의 엄격한 훈육으로 인해 뿌리내린 율법적인 복음관에도 불구하고 알버트는 일찌감치 사역자가 되기를 원해서 14세에 신학을 공부하기로 이미 작정하였다. 알버트의 누님 루이스는 알버트가 이러한 결정을 내리게 된 특별한 계기는 알버트가 9살 때 폴리네시아의 사도라고 불렸던 순교자 죤 일리암스 목사의 자서전을 읽었을 때라고 하였다. 이처럼 알버트 심슨이 중요한 결정을 내리는 분기점마다 그 배경에 한 권의 책이 역사했다. 이 결정은 그 첫 경우였다. 이런 질문을 할 수 있겠다. 알버트의 결정은 심슨 출생 시 어머니 제인 심슨이 심슨을 헌신한 기도의 응답이었을까? 아니면 장로교단의 초기 선교사인 죤 게디 목사가 유아세례를 베풀며 선교사로 헌신시킨 기도의 결과였을까? 대답은 독자들의 상상에 맡긴다. (계속)

 

C&MA를 통한 백년이상의 하나님역사 (C&MA 한인총회)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