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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양 칼럼: 제2장 비전의 뿌리 (9)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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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가올 대학 생활과 사역에 대해 상고하며 알버트는 하나님께 대한 헌신을 더욱 확고히 하기
위해 서면으로 하나님께 언약을 바치기로 결심했다. 1861년 1월 29일 심슨은 하루를 금식과 기도로 하나님께 드리며 900개 어휘로 구성된 “거룩한 서약”(Solemn Covenant)을 초안했다. 17세의 젊은이의 글치고는 대단한 내용의 글이었다. 그 골자는 이러했다. “저는 죽음가운데서 부활하신 당신께 나 자신을 온전히 드립니다.
저를 받으시고 당신의 영광만을 위하여 사용하소서! 제가 주님의 것,
영원히 주님만의 것이 되었음을 하늘에 기록하소서!” 준비되었는가? 당시만 해도 캐나다 장로교회의 사역자 지망생들은 신학대학에 입학하기 전에 노회의 승인부터
받아야 했다. 목회자의 질을 유지하기 위해 교회가 만든 검정단계의 첫 단계였다.
스코틀랜드시절부터 그토록 많은 순교의 피를 흘리며 지켰던 신앙을 엉터리 지도자들로 인해 망가뜨리는 것을 원치 않았기
때문이다. 이에 따라 1861년 9월말 워커 목사님은 자신이 개인지도한 일버트와 하워드 두 사람을 온타리오 주 런던 노회에 천거했다. (당시 노회는 지역 노회로서 목회자 한 명과 그 지역교회들이 1명씩 파송한 장로들로 구성되었다.) 노회 구성원들의 엄정한 면모와 태도는 사역자 지망생들의 기를 죽이기에 충분했다.
심사관들은 우선 노회의 다른 업무를 처리하면서 사역자 지망생들을 거들떠보지도 않는 것처럼 보였지만 실상은 유심히 관찰하였다.
오랜 시간이 경과한 후 드디어 심슨 형제를 비롯한 사역자 지망생들에게 대한 엄정한 면접시험이 진행되었다.
면접은 각자의 영적체험, 신앙의 건전함, 사명에의 소명과 학문적 준비에 걸쳐 진행되었다. 다행하게도 (물론 노회원들에게 만찬가지였겠지만) 각자가 준비해온 설교원고를 직접 발표하지는 않아도 되었다.
지망생 전원이 토론토 소재 녹스 대학에 입학하도록 허락을 받았다. 하워드는 건강상의
문제로 그 후에도 1년간 학교에 가지 않았지만 알버트는 즉시 대학 공부를 시작했다. 알버트는 입학 전 이미 철저히 준비하였기 때문에 신학대학원 예비과정인 문학부의 졸업반과정에 입학을 허가 받는 특례를 받았다.
[당시 신학교는 예과 과정인 문학부와 신학대학원 과정으로 나누어져 있었다. 학부과정
3년은 예과 과정으로 신학을 공부하기 전 희랍어, 히브리어,
라틴어 등 언어공부와 예비학문인 문학과정과 철학 등 과정을 이수하게 하였고 일단 예과 과정을 이수한 후 신학대학원에서
3년 과정의 신학 공부를 계속하게 되어 있었다. -역자 주.]
심슨의 학구열은 잠시도 식지 않았지만 그의 영적 삶은 그렇지 못했다.
당시 심슨의 룸메이트는 마침 학교에서 놈팡이로 소문난 학생이었다. 그는 걸핏하면
남자들만의 파티를 벌리곤 했다. 이 파티에는 맥주와 위스키가 항상 준비되었고, 유행가와 음담패설이 빠지지 않았다. 여태까지 한번도 겪지 않았던 황당한 상황에 부딪힌 젊은
심슨은 이러한 난장판을 거부하거나 중단시킬 마음의 준비도 없었고 경험도 일천했다. 근묵자흑이라 했다.
이런 패류들과 한 방에서 지내야만 했다는 사실 하나만으로도 심슨의 영적 삶을 망치기에 충분했다. (계속) C&MA를 통한 백년이상의 하나님역사 (C&MA 한인총회)중에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