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양 칼럼: 2장 비전의 뿌리 (10)

심슨은 어느 순간 자신의 영적 삶이 크나큰 위기를 맞았음을 깨닫고 하나님께 서약을 새롭게 했다. “186391. 타락했다 회복되다. 오 주여, 그러나 제 영의 불길은 아작도 회복되지 않았습니다. 아직도 심령 한 구석에는 죄의 삶을 계속하려는 욕구가 저를 억누르고 있습니다. 오 주여, 저를 대신하여 십자가에서 피 흘린 예수님으로 인하여 제 과거의 죄를 용서하여 주시고 앞으로도 깨끗한 영을 주시사 저를 새롭게 하소서. 아멘.”

녹스 대학의 문학부와 신학대학원은 같은 캠퍼스 내에 있었다. 심슨은 문학부 3년 과정에 상응하는 과정을 이수한 후 즉시 3년 과정의 신학대학원 과정에 진학했다. 신학대학원은 캐나다 전 총독의 관저였던 엘름슬레이 홀을 사용하고 있었다. 비록 규모는 작았지만 녹스 대학의 신학대학원은 당시 캐나다에서 가장 뛰어난 신학교수들을 보유하고 있었다.

신학대학원에서 알버트는 명석한 두뇌와 창의력과 응용력을 여실히 드러내었다. 그는 일단 배운 것은 무엇이든 정확히 기억하는 재주가 있었을 뿐 아니라 그 내용을 확실히 이해하고 응요할 줄 알았다. 거기에다 강의를 듣거나 책을 읽고 그 요점이 무엇인지 정확히 파악하여 이를 누구나 이해할 수 있는 간단한 말로 풀이할 수 있었다. 알버트는 배운 것을 빨리 이해했기 때문에 남는 시간에 부족한 학생들에게 개인교수까지 하여 학교수업료에 충당하곤 했다. 일버트는 학부시절과 신학대학원 시절 학교에서 실시한 논문경시대회에 자주 논문을 제출했다. 그 이유는 학생으로서의 명예를 얻으려 했던 것이 아니고 단지 존리 필요했기 때문이었다. 한번은 유아세례를 옹호하는 논문을 제출하여 특상을 받았다. 제미있는 것은 후일 자신의 논문에서 그토록 옹호했던 유아세례에 대한 입장을 취소하게 되었던 것이다.

 

                        첫사랑에 눈이 뜨이고

심슨의 일생에 가장 중요한 사건이 이 기간 발생했다. 바로 첫 사랑에 눈이 뜨인 것이다. 당시 신학대학원 핵생들은 대부분 토론토에 있는 장로교회 교우들의 가정에 하숙을 하였다. 1년 후 하눠드가 신학대학원에 입학하자, 알버트와 하워드 두 형제는 자신들이 하숙할 곳을 근처에서 모색하였다. 마침 두 형제가 출석하던 쿡스 장로교회 담임목사이던 죤 제닝스 박사가 두 형제에게 관심을 기울이게 되었고 당시 교회 장로님인 죤 헨리의 집에 빈방이 있는 것이 기억나 장로님에게 두 녹스 대학 학생에게 방을 제공하면 좋겠다고 말했다. 헨리 씨는 두 형제를 만나본 후 이들에게 거처를 제공할 것을 수락했다. 이 사건이 알버트의 인생에 얼마나 중요한 결과를 낳았는지 독자들은 알게 될 것이다. 헨리 씨에게 두 딸이 있었는데 그 중 언니인 마가렛의 매력적인 모습이 심슨 형제의 마음을 송두리째 사로잡았다. 혹설에 의하면 알버트는 첫눈에 마가렛에게 반했다고 한다. 50여 년이 지난 후 심슨은 토론토대학 학생들에게 이 일에 대해 회고했다. “그 날 마가렛이 문을 열어 주는 순간 바로 그 문 앞에 선 그 여인은 내 마음을 송두리째 앗아가 버렸다.” 마가렛의 매력은 그녀의 작은 몸집 때문에 더욱 빛났다. 형 하워드도 마가렛에게 반했지만 그에게 기회가 돌아올 여지는 조금도 없었다. 왜냐하면 알버트는 하워드에 비할 수 없는 매력을 가졌기 때문이었다.(계속)

C&MA를 통한 백년이상의 하나님역사 (C&MA 한인총회)중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