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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양 칼럼: 제2장 비전의 뿌리 (1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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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남형의 얼굴모습하며 단아한 몸가짐과 굵고 매력적인 음성은 첫날부터 마가렛의 마음을 사로잡았다.
사실 결혼은 시간문제였다. 신학대학원 3년 과정을 마치는 일만 남아 있을 뿐이었다. 알버트의 학생시절에는 항상 돈 문제가 떠난
적이 없었다. 단돈 일전도 없어 하나님 앞에 하숙비를 낼 수 있도록 해달라고 부르짖어 기도한 것이 한두
번이 아니었다. 극도로 궁핍한 가운데서도 일버트는 사랑하는 마가렛을 기쁘게 해줄 줄 알았다.
한번은 주일설교를 한 대가로 당시로는 큰돈인 10불을 받았는데 바로 다음날 그
돈 전액을 마가렛의 선물을 사는데 사용했다. 명설교가 심슨 심슨은 학과공부만 잘했던 것이 아니라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설교가였다.
심슨이 초청강사로 간 교회에서 일어났던 사건이다. 교회의 장로 한 분이 심슨이
강단에 올라가지 못하도록 저지했다. 왜냐하면 장로님의 눈에는 이런 풋내기가 그날의 초청강사라는 사실이
믿어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당시만 해도 강단은 극히 신성시되어 아무나 강단에 세우지 않는 상황이었다.
이런 상황에서 교우들이 보기에 아직도 소년 테를 벗지 않은 풋내기 심슨이었음을 감안하면 그들이 의아해했던 것도 무리가
아니다. 그러나 일단 심슨이 입을 열면 상황은 역전되어 버렸다. 세련된 어휘로 정연한 설교를 시작하면 듣는 이들이 경청하지 않을 수 없게 만들었고 한번 그의 설교를 들은 사람은 심슨의 나이와
상관없이 그를 존경하였다. 녹스 대학에서 심슨의 선배였던 미첼(J. W.
Mitchell)은 한 여름동안 심슨과 교대로 같은 교회 강단을 맡았던 적이 있었다. 그는 이렇게 말했다. “저도 나름대로 성실하게 설교준비를 했고 내용도 쓸만했습니다.
그러나 후배인 심슨의 그늘에 가려 저는 전혀 빛을 보지 못했지요. 심슨은 당시
이미 설교가로서 뛰어난 재능을 드러내고 있었기 때문이지요.” 심슴은 1865년 4월에 녹스 대학을 졸업했다. 그러나 졸업도 하기 전에 이미 해밀턴 시 녹스 교회의 임시설교자로
교회를 섬겼다. 녹스 교회에서 설교할 수 있다는 사실만 해도 당시 상당한 명예였다. 왜냐하면 녹스 교회의 강단은 당시 캐나다 전역에서 가장 중요한 장로교회 강단이었기 때문이다. 비록 1865년에는 담임목사가 바뀌는 과정이라 출석교우수가 현저히 감소했다고는 하나 녹스
교회는 교우숫자도 많을 뿐더러 교우들이 다 경제적으로 넉넉하였기 때문에 당시 장로교단의 쟁쟁한 설교자들이 앞 다투어 강단을 맡았던 곳이었다.
임시직으로 출발한 심슨의 녹스 교회의 사역은 곧 영구직이 되었다. 1865년
6월 개최된 교인총회에서 신학대학원을 갓 나온 21세의 슴슨의 임용을
연장하기로 만장일치로 합의했기 때문이었다. 사실 녹스 교회가 심슨을 임용하도록 결정한 것은 좀 서두른
감이 있었다. 왜냐하면 심슨은 노회에서 아직 사역증도 받지 않았기 때문이다. 어쩌면 녹스 교회의 장로님들은 심슨을 다른 교회에 빼앗기지 않기위해 일을 저질렀는지도 모른다. 토론토 노회에서 심슨과 사역자 후보생들이 안수고시를 보게 되었다.
신학대학원의 최종 졸업시험보다도 훨씬 힘든 시험이었을 것이다. 히브리어,
희랍어, 신학, 교회사와 교회 행정에 대한
실력을 세밀하게 검정 받을 뿐 아니라 신앙생활의 체험에 대해서 질문을 받았다. (계속) C&MA를 통한 백년이상의 하나님역사 (C&MA 한인총회)중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