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양 칼럼: 2장 비전의 뿌리 (13)

알버트 심슨과 마가렛 헨리의 결혼식은 제닝스 박사의 주재로 토론토시 쿡스 교회에서 거행되었다. 이로부터 54년이라는 긴 세월동안 두 사람의 결혼생활은 즐거운 추억과 생산적인 동역으로 가득한 생활이었다. 그러나 때로는 오해와 갈등도 있었으며 가슴 아픈 추억도 있었다. 신혼여행은 배를 타고 센이트로렌스강을 유람하느 것이었지만 알버트 심슨의 후일의 삶의 패턴처럼 짧았다. 왜냐하면 주일에는 해밀턴으로 돌아가서 설교를 해야 했기 때문이다. 심슨의 목회자로서의 삶의 갈등이 여기에 있었다. 그의 최우선순위는 사역이었고 가정은 그 다음이었다. 이로 인해 마가렛은 이후 많은 갈등 속에 휘말렸다. 알버트는 이미 뛰어난 사역을 시작하는 문턱에서 서 있었고 그 준비가 되어 있었다. 확실한 회심의 체험과, 소명의식과, 뛰어난 신학실력을 모두 갖춘 알버트였기 때문에 모든 일에 주저할 필요가 없었다. 그러나 마가렛의 경우는 이와 달랐다. 기껏해야 믿음을 가졌다는 사실과 기독교 가정에서 양육 받았고 고졸학력이 전부였다. 그러하니 마가렛은 항상 불확실한 미래에 대해 불안해할 수밖에 없었다. 알버트가 창공을 향해 비상할 때 마가렛은 방향을 잃고 몸부림치곤 했다. 알버트의 비전이 너무 거룩한 하늘의 것에 치중하다 보니 때로는 아버지로서 남편으로서의 의무를 소홀히 히였고, 남편과는 달리 현실적인 일에 우선순위를 둔 아내에게서 존경받지 못하는 경우도 있었다.

이야기를 다시 18658월 신혼 때로 돌리자. 신혼부부에게 중요했던 것은 세인트로렌스 강의 고요한 수면의 낭만이었지 불확실한 미래가 아니었다. 배 위에서 강물을 내려다 보는 신혼부부는 마턍 행복했을 뿐이었다.

 

                         균형잡힌 사역

심슨의 해밀턴에서의 사역에 대해 고찰해 보자. 심슨의 사역은 무엇보다도 설교와 목회 양면을 구비한 균형 잡힌 사역이었다.

첫째, 심슨은 힘써 강단사역을 개발했다. 그의 설교준비는 치밀했다. 우선 독서에서 질적, 양적인 균형을 갖추었다. 무엇을 읽던 주의를 기울였을 뿐 아니라 폭넓은 독서를 하였다. 일단 준비가 되면 설교이든 강의이든 간에 원고를 유려한 필체로 정서했다. 심슨의 뛰어난 설교에 힘입어 교인 수는 급격히 증가해서 교회건물에 차고 넘쳤다.

둘째, 심슨은 설교에만 신경을 쓰다가 목양을 게을리 하는 오류를 범하지 않는 현명한 목사였다. 너무도 교우심방과 상담에 열중하다 보니 몇 번이나 쓰러지기 직전까지 갔다. 급기야는 교인총회에서 이 문제를 논의하고 심슨에게 두 달 동안 휴가를 가지도록 권면했으나 심슨은 한 달만 휴가를 다녀왔다. 그러나 1871년에는 교인총회에서 권하는 대로 4개월의 휴가를 가지고 그동안 영국과 유럽을 방문했다. 이 기간동안 심슨은 아내 마가렛에게 편지를 써서 자신이 방문한 지역들에 대해 소개했다. 뿐 아니라 마가렛과 두 아들 알버트 헨리와 제임스 고든 해밀턴에 대한 자신의 사랑을 전했다. 이 두 아들 외에도 아들이 하나 더 있었으나 메빌 제닝스는 불과 3살 반 때 병사했다. (계속)

 

C&MA를 통한 백년이상의 하나님역사 (C&MA 한인총회)중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