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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양 칼럼: 포로기의 광야 “절망의 광야” (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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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사야 1-39장에서는
이스라엘의 죄를 지적하고 심판을 선포했다. 그러나 40장에서는 '위로'의 메시지를 전하라는 사명이 주어진다. 예언자는 위로하는 사람이 아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이사야에게 더 이상 심판을 선포하지 말고
위로의 메시지를 전하라고 하셨다. 세례자 요한이 광야까지 와서 하나님의 말씀을 들으려 했던 사람들에게 독설을 내뱉은 이유는
그들에게 아직 구원받을 기회가 남아 있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회개하고 구원받도록 하기 위해 치는 설교를
했던 것이다. 그들에게 필요한 것은 회개와 심판에 관한 설교지 위로하는 설교가 아니었다. 반면 하나님의 심판을 받아 나라가 망하고 포로로 끌려간 백성에게 필요한 것은 하나님께서
다시 한 번 그들에게 기회를 주셔서 그들이 포로에서 벗어나 시온으로 돌아와 나라를 다시 일으킬 것이라는 위로의 메시지였다.
그래서 이사야로 하여금 위로의 메시지를 선포하게 하셨던 것이다. 아직 광야에
들어가지 않은 사람들에게는 광야에 들어가지 않도록 하기 위해 회개하라는 메시지가 필요하지만, 이미 광야에
들어간 사람들에게는 회개가 아니라 희망과 용기를 주는 위로의 메시지가 필요하다. 그래서 이사야 40장부터는 위로의 메시지가 선포되고 있는 것이다. 광야에 들어가 있는 자들에게 필요한 것은 위로다.
그들에게 왜 그들이 광야에 들어갔는지, 회개해야 광야에서 빨리 나올 수 있다든지
하는 정죄의 말을 해서는 안 된다. 그들이 왜 광야에 들어갔는지는 그들 자신이 더 잘 알고 있을 것이다.
광야에 들어간 이들이 있다면 그들 옆에 잠잡히 함께 있어 주면서 그들이 그 광야에서 나오게 하는 데 힘을 보태 주라.
정죄하거나 비난하거나 바른 말로 상처 주지 말라. 엘리야가 로뎀 나무 아래서 죽기를 간구했을 때 천사가 그를 찾아왔다.
그러고는 그에게 먹을 것과 마실 것을 계속 가져다주었다. 엘리야는 그것을 먹고
힘을 얻어 일어나 호렙 산으로 가서 하나님을 만났다. 광야에 들어가 삶의 의욕을 잃고 지쳐 있는 사람들에게는
책망이 아니라 위로가 필요하다. 그래야 그들이 새 힘을 얻고 다시 일어날 수 있다.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을 가나안 땅에서 내어 쫓으셨다.
그들은 바벨론에 포로로 끌려가서 광야를 살아야 했다. “오직 시온이 이르기를 여호와께서 나를 버리시며 주께서
나를 잊으셨다 하였거니와”(사 49:14). 이스라엘 백성이 바벨론에 끌려갔을 때 얼마나 많은 기도를 드렸겠는가?
벌 받아서 끌려가기는 했지만 그래도 하나님께서 용서해 주시고 다시 고향으로 돌아가게 해 주실 것이라 믿으며 기도했을
것이다. 그렇게 울며 1년, 3년, 5년을 기도했다. 그러나 아무런 응답이 없었다.
7년, 10년, 15년을 기도했다.
그래도 응답이 없었다. 20년을 기도했지만 그래도 응답이 없었다.
이스라엘 백성은 하나님께서 그들을 잊어버리셨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하나님은 그렇지 않다고 말씀하신다. “여인이 어찌 그 젖 먹는 자식을 잊겠으며 자기 태에서 난 아들을 긍휼히 여기지 않겠느냐 그들은 혹시
잊을지라도 나는 너를 잊지 아니할 것이라”(사 49:15)(계속) 광야를 살다 (두란노) 중에서 |